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직후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양안(兩岸ㆍ중국과 대만) 정상회담을 제의했다. 하지만 대만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데다 중국이 미국ㆍ대만 간 밀착에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이라 성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28일 대만 연합보(聯合報)에 따르면 차이 총통은 전날 가오슝(高雄) 시찰에 나섰다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양안의 평화ㆍ안정에 도움이 되는 어떤 일이라도 가서 할 뜻이 있다”면서 “정치적 전제를 내걸지 않고 상호 대등의 원칙을 견지한다면 중국 최고지도자 시진핑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조건이라면 어떤 지도자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이 총통의 제의가 수락되면 2015년 11월7일 싱가포르에서 양안 분단 66년만에 시 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당시 총통 간 정상회담에 이은 2차 양안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것이다. 중국 네티즌들도 전날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큰 관심을 보이며 “남북처럼 중국도 대만과 빨리 통일했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달아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은 양안 분단 44년만의 첫 고위급 공식회담이 열린 지 25주년이 되는 날이어서 중국과 대만에 더욱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중국과 대만은 1993년 4월 27일부터 3일간 싱가포르에서 중국 측 왕다오한(汪道涵) 해협양안관계협회 회장과 대만 측 구전푸(辜振甫) 해협교류기금회 이사장 간의 역사적 회담을 갖고 양안 교류의 물꼬를 튼 바 있다.
양안은 이후 공식 민간교류를 활발하게 늘리며 시 주석과 마 전 총통 간 회담까지 이어왔지만 2016년 대만 독립 성향의 민진당 차이잉원 체제 이후 관계가 급전직하로 바뀌었다. 중국은 차이잉원 정부가 92공식(九二共識ㆍ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대만 독립세력을 겨냥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이 대만여행법을 통해 고위관료 간 교류를 가능케 하고 대만에 무기 판매를 추진하면서 양안 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차이 총통의 제안에도 2차 양안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중국은 실제 차이 총통의 제안에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최근 대만 내에서는 차이 총통의 각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남북 정상이 강대국 사이를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움직여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연합보는 평론을 통해 “마잉주 전 총통이 ‘시마회’(習馬會)를 이뤘던 것처럼 차이 총통도 문재인 대통령 같은 역할을 자임해 ‘시차이회’(習蔡會)의 계기와 조건을 만들어내야 한다”면서 “문 대통령이 취임 1년도 안돼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는데 임기 2년이 다 돼 가는 차이 총통은 더이상 세월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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