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후보 싱가포르는 어떤 곳
감시통제극심 ‘잘사는 북한’으로 불려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끝나자 이어 내달 말 또는 6월 초 열릴 것으로 보이는 북미회담 장소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회담 장소에 대해 “2곳으로 압축됐다”고 밝힌 가운데, 27일(현지시간)엔 회담장 선정 논의에 정통한 인사 2명을 인용해 “미국 행정부는 싱가포르를 선호한다”는 CNN 보도가 나오면서 싱가포르가 북미회담 장소로 급부상하고 있는 분위기다.
싱가포르는 홍콩과 함께 아시아 경제 허브로 꼽히는 도시국가다. 영어를 제1공용어로 삼고, 낮은 법인세와 투명하면서 기업 친화적 제도로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했다. 인구 580만의 절반은 외국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외국인의 반은 이곳에 사무실을 둔 주재원, 나머지 반은 공사 현장 인부와 운전기사, 청소부 등으로 알려져 있다.
강력 범죄가 드문 싱가포르는 ‘잘 사는 북한’으로도 불린다. 경제에서만큼은 큰 성장을 이뤘지만 감시와 통제가 엄하다는 뜻이다. 실제 ‘안전한 관광지’로 각광받는 싱가포르지만, 시내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이 경찰이다. 싱가포르에 아시아본부를 두고 있는 A사의 주재원 K씨는 “도시 곳곳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다”며 “직장인이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집에 들어가는 퇴근 시간까지 평균 2,300컷이 찍힌다”고 전했다. 싱가포르는 일본의 정보통신(IT) 업체 NEC와 함께 CCTV 수집 정보를 기반으로 빅데이터 분석, 얼굴 인식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구축, 확대하고 있다.
언론의 감시와 통제도 굉장히 높은 나라다. ‘언론은 있지만 비판기능은 없다’고 할 정도다. 지난 25일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18언론자유지수에서 싱가포르는 180개국 151위를 차지했다. 동남아 내 베트남(175), 라오스(170)보다는 앞서지만 사실상 군부가 정권을 잡고 있는 미얀마(137), 훈센 총리가 야권을 탄압, 민주주의를 ‘박멸’하다시피 하고 있는 캄보디아(142) 보다 낮은 수준이다. 경제지와 함께 종합지에 해당하는 신문(스트레이츠타임즈)이 있지만 정부 비판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CNN을 표방한 채널뉴스아시아 방송에서도 정부 비판 보도를 접하기 어렵다. SNS 활동도 통제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605㎢)보다 약간 큰 면적(697㎢)에 약 580만명이 사는 싱가포르는 외국인에 근로자에 의해 도시(국가)가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후진국에서 온 이들의 일상은 관광객이나 일반인들의 생활과는 철저하게 구분돼 있다는 게 현지인들의 말이다. 공사 현장 근로자들은 인도, 필리핀 등에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외곽에 정해진 특정숙소에서 시내 공사현장으로 이동할 때 승합차나 버스가 아닌 화물 트럭을 이용한다. 베트남에서 무역업을 하고 있는 싱가포르인 폴(51)씨는 “먼지 투성이의 공사 현장 옷차림으로 돌아 다니는 사람이 싱가포르에는 없다”고 말했다. 인권의식 수준도 높지 않다는 뜻이다.
주재원 K씨는 “아이들 혼자 택시를 타고 밤 1시에도 다닐 수 있는 나라, 세계적 수준의 생활 인프라를 누리면서도 월 500달러에 집안 메이드를 쓸 수 있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며 “엄격한 감시와 통제에 숨 막힐 때가 있지만 이 때문에 생기는 안전이라고 생각하면 참을 만하다. 북미 정상회담이 이곳에서 열리게 된다면 완벽한 통제가 가능한 곳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ㆍ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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