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집권 1년 만에 고용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론’을 근거로 한 노동시장의 급격한 개입과 규제가 ‘재난적’ 역효과를 내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자 정부 또한 혁신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원칙론에 동의하는 듯하다. 혁신성장의 본질은 규제를 혁파하고, 기업의 투자의욕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과 충돌하고, 기업과 시장을 개혁의 대상이자 적폐의 일부로 보는 정권의 근본 시각과도 배치된다. 때문에 혁신성장은 ‘구호’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혁신성장의 실천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한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공유경제의 영역이다. 공유경제는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사용자들의 자산을 다른 사용자들에게 연결해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사업을 의미한다. 이미 기업가치 70조원의 유니콘(기업가치 약 1조원 이상 스타트업) 기업 1위 미국 우버(Uber)를 비롯해 숙소연결 공유기업 에어비엔비(Air BnB), 중국의 개인간 대출중개(P2P) 업체 루닷컴(Lu.com) 등이 대표적이다.
2008년 전후를 기점으로 시작된 공유경제 현상으로 지난 10년간 수많은 글로벌 대기업이 탄생했다. 우버가 부상하자 새로운 글로벌 플랫폼 독점 기업이 탄생할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우버는 중국에서는 디디추싱(滴滴出行),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는 그랩(Grab)에게 패배하고 있다. 이는 개별 시장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혁신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사업자가 성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유경제는 단순히 자동차를 쉽게 이용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차량공유의 경우, 실직자들이 별 다른 자본 투자 없이 손쉽게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안전망 역할을 한다. 또 음주운전을 줄이고, 식음료 산업을 활성화시키고, 전자상거래 회사의 물류비용을 감축시키는 등 사회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고 경제 활성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공유경제 사업의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불법’이다. 정치권은 경쟁을 두려워하는 택시업계의 반발을 의식해 공유경제에 소극적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지대추구의 견고한 틀에 갇혀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제 우버와 구글 지도는 글로벌 이동의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외국에 가서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주는 인류 역사 최초의 ‘전 지구적’ 이동수단인 셈이다. 그런데 두 가지 서비스 모두 허용되지 않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이는 우리 사회의 디지털 혁신 수용능력이 ‘치매’ 수준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의 혁신을 보고 공유경제 기업의 창업에 뛰어든 젊은이들이 좌절과 분노에 살고 있다.
혁신 이론을 창안한 슘페터는 혁신을 ‘창조적 파괴’라고 정의했다. 창조적이란 말은 소비자 또는 사회의 후생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파괴는 기존 질서와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질서에 파괴적 효과가 없는 것은 혁신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을(乙)의 보호’ ‘상생’이라는 허울로 기존 기득권과 충돌하는 노력을 거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안에 공유경제 기본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 10년 이상 진행돼 자리를 잡은 공유경제 분야에 대해 지금에 와서 ‘기본계획’을 세우겠다는 것도 문제지만, 사실 이 분야는 정부가 기본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다. 그저 규제개혁을 통해 민간이 하고 싶은 사업을 할 수 있게 해주면 될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 정부가 공유경제 기본계획을 수립했다고 우버, 디디추싱, 그랩이 탄생한 게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은 정부가 빠지면 되는 ‘아래로부터의’ 아이디어 혁명이다. 공유경제 분야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이 공허한 ‘립 서비스’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이병태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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