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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고향 리얼리즘

입력
2018.04.27 14:2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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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바보다. 수많은 사람 도시로 보내고 처량하게 꺼~이 꺼~이 울음으로 피멍을 삭힌다. 떠나지 못한 노인만이 쓰러져 가는 마을청년회와 노인회를 아픈 허리 휘어잡으며 지키게 한다. 그곳이 복숭아꽃 살구꽃 피었던 고향이다.

고향은 멍청이다. 경제개발과 고도성장, 인터넷과 모바일 속에서도 초지일관 낫과 호미로 땅을 일구게 한 위인이다. 화려한 대도시와 비교되는 저소득과 빈곤, 불편한 병원과 5일장 속에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침묵하는 곳. 오곡백과 무르익던 추억이 저주받은 갈림길이었다.

고향은 푼수다. 밴드와 카톡, 문자도 익숙하지 않다. 힘 있는 이들이 사용하는 텔레그램이나 시그널은 이름조차 들어 보지 못했다. 마을에 공지사항이나 애경사가 있으면 아직도 “아~아~ 이장입니다” 운을 띄우는 마을 스피커로 소통한다. 그곳이 세계 최강의 스마트폰 강국을 만든 기술의 원천이다.

고향은 아프다. 도시가 고속도로, 고속철, 지하철로 무장할 때 정겨웠던 버스노선 줄어들고, 황급한 버스마저 적자로 끊길 때 고향은 개자식이 된다.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에는 틀림없는 말로 균형개발과 낙후지역 지원을 공약했다. 농산물개방과 우루과이 라운드(UR) 이후 20여년 이상을 거짓 없는 악수로 약속했다. 하지만 도시에 비해 뭐하나 좋은 게 나은 게 없다. 분노의 마음, 초조의 마음, 괴로운 마음, 열등한 마음 그런 심정이 고향을 더욱 아프게 한다.

고향은 곤혹(困惑)스럽다. 일본은 개인이 원하는 지역에 고향세를 납부한다고 염병을 한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는 낙후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소득을 보전해 준다. 도시평균소득을 100으로 잡았을 때 최고 110까지 보조금을 준다. 고향의 경관과 농업,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가치를 세금으로 보전한다는 말이다. 두 수 아래 중국도 국가농촌진흥전략구획(2018~2022)에 따라 새로운 로드맵에 기대하는 모양이다. 다른 나라 고향이 잘나가니 화병에 술과 욕이 향기롭다.

고향은 날고 싶다. 비록 바보, 멍청이, 푼수지만 꿈이 있다. 다양한 소득, 지세(地勢)와 활력, 자연과 매력, 예술과 역사를 간직한 채 도시와 다른 멜로디를 들려주고 싶다. 인구도 늘리고 소득도 높이고 싶다. 부러진 날개를 추슬러 다시 비상하려면 어떤 사람과 정보, 자본을 엮을지 고민이다.

고향은 환자이다. 비록 몸은 아파도 정신은 살아 있다. 도시가 씹다 버린 순수와 근검절약, 애국애족의 마음이 숲과 논길을 거쳐 강으로 흐르고 바다를 지킨다. 프랑스인들은 어메니티(amenity) 지역자원지도를 만든다.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고향의 역사, 문화 예술, 농업 등 다양한 자원을 지도에 표시하고 재현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고향은 환난상휼(患難相恤)을 애타게 기다린다.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것은 상부상조와 함께 우리 민족의 정점이다. 몸이 아픈 병자는 의사와 간호사, 약사의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고향도 전 국민이 동참했던 새마을운동과 같은 “고향재활운동”을 원한다.

고향은 진정 변화하고 싶다. 지난 30년 동안 고향은 점점 가난해졌다. 1983년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을 100으로 놓았을 때 119까지 농촌이 부강했을 때도 있었다. 이후 꾸준히 추락해 1995년 95.0%, 2006년 78.2%, 2017년 64.4%까지 몰락했다. 고향이 아무리 바보, 멍청이, 무기력하지만 이건 아니다. 국가균형발전사업의 지역개발부문과 관련된 부처사업의 기획 지원, 인구감소지역의 자립 촉진·활력 제고 및 효율적 지원을 위한 통합 지원 사업은 정말 안녕하신지 묻고 싶다.

고향 아닌 남과 북의 특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사변(事變)의 시대. 지역균형발전과 인구감소대책의 콘트롤 타워는 어디서 깊은 잠에 빠져 있는가.

유상오 한국귀농귀촌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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