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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택배기사의 숨가쁜 하루 “이렇게 고될 줄이야…”

입력
2018.04.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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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이른바 ‘택배 대란 사건’. 사실 현장의 택배기사들에겐 이미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된 지 오래입니다. 노동조건으로 따지자면 뒤에서 1등을 놓치기 서럽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한국일보가 들어봤습니다. ‘분초’를 다투는 한 택배기사의 하루를 따라가봅니다.

기획, 제작 : 박지윤 기자

“아이고! 이거 어떡해…” “이래서 욕심을 부리면 안 되나 봐. (웃음)” 카트가 기어이 사고를 쳤다. ‘우당탕탕’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택배 상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뒤였다. 

눈 뜨자마자 운전대를 잡은 지 꼬박 12시간째 ‘근무 중’. 해는 저무는데, 이제 겨우 반을 끝냈다.  “아유, 운전도 아주머니가 하셔? 남자가 하는 일인디… 힘들겄수.” 등 뒤로 꽂히는 딱한 시선은 다반사. “아닙니다!” 익숙한 듯 씩씩하게 되받아 치는 그는 쉰한 살의 여성 택배기사다.

“우리 집 거 어딨어? 우리 거 얼른 찾아서 먼저 줘요. 내려온 김에 갖고 올라갈 거니까. 빨리.” 2,000여 세대가 모여 사는 경기도의 한 대형 아파트 단지. 누군가의 ‘빨리빨리’ 요구가 쉴새없이 이어진다. 급한 마음으로 달려가 초인종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는 경우가 태반. 

배달하는 순서에 따라 차곡차곡 정리해 둔 박스더미에서 ‘특정 물건’을 빼내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  1톤 트럭을 전부 털어 송장 정보를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  하루에 약 200개, 시간당 최소 30~40개씩은 날라야 하루치 물량을 털어낼 수 있는 기사들에겐 1분 1초가 아깝다. 

“더군다나 전 여자라서 힘이 달리니까… 남성분들의 반 밖에 못해요.” 한밤중에 층계참을 걸어 내려올 때면 ‘어디선가 치한이라도 불쑥 나타나진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면 이젠 엘리베이터와의 전쟁. 카트를 끌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간 뒤 한 층 한 층 타고 내려오면서 차례로 배달을 하는 식. 엘리베이터는 겨우 반 평 남짓. 카트 한 개가 들어차면 2명만 타도 숨이 턱턱 막힌다.

“이00씨 맞으시죠? 박00씨도 이 집 사시는 거 맞고요?” 같은 호수지만 서로 다른 이름이 적힌 두 개의 택배 상자를 내려놓는 오씨의 표정엔 ‘혹시나’ 하는 걱정이 스친다. “배달 실수일까 봐요. 잃어버리면 100% 기사 책임이니까.” 고객이 주소를 잘못 적어 배달사고가 나도 변상은 택배기사 책임이다. 

열 집 중 여섯 곳은 부재중이다.  “다들 부재 시 경비실에 맡겨달라 하시는데, 경비실에 너무 많이 갖다 드리면 또 눈치가 보여요. 거기서 분실되면 그건 또 경비원 분들 책임이거든요.”

“너 진짜 미친 거 아니니? 택배를 왜 거기에다 놔? 아오 씨X 열 받아.” 지난해 9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오씨가 고객으로부터 면전에서 들었던 말이다. “‘욕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면 다들 ‘내가 언제 욕을 했냐’는 식으로 우기기 일쑤였어요.” 

문제는 고객의 갑질이 ‘폭언’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아예 공주님 시녀 부리듯 하기도 한다. “ ‘절대로 택배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지 말아라.’  ‘내가 문 밖으로 나올 때까지 두 손으로 상자를 받치고 기다려라.’ 마음에 난 생채기는 쓰라렸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이른바 ‘택배 대란 사건’은 이미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우리 지역에도 택배차량 진입이 금지된 단지가 있어요. 거기 담당도 저 같은 여자예요. 자그마한 카트 끌고 다니면서 혼자 다 하시죠. 단지가 크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지.”  별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다. ‘내 구역에서 만큼은 제발…’ 운에 기대는 것이 전부다.

“저번 주부터 손목이 너무 아파요. 토요일 하루 쉬는데 치료는 고사하고 병원 한 번 갈 시간이 없더라고요.” 아파도 참는다. 대신 일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병가라도 내려면 ‘대타’를 구해야 한다.

산재 처리도 불가능하다. “택배기사들은 엄밀히 말하면 노동자가 아니에요. 대리점에 예속돼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개인사업자죠. 사실상 자영업자예요. 4대 보험 적용도 못 받죠.” 그래서 주 52시간 근로도, 올라간 최저임금도 모두 남 얘기일 뿐.

권리는 없는데 의무는 있다. 매일의 성과를 애플리케이션에 기록해 CS(고객 만족)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실적을 근거로 재계약 시즌마다 압박을 받는다. “웃긴 건 이 애플리케이션 이용료도 택배기사가 부담해야 한다는 거예요."

“오전 7시에 터미널로 나가서 꼬박 5시간, 길게는 7시간까지도 분류 작업을 해요. 물량이 많은 날은 거의 오후 2시 가까이 돼야 배송에 나설 때도 많죠.”  ‘분류 작업’은 서브터미널로 온 물량들을 택배기사들이 자신의 구역별로 나눠 차에 싣는 작업. 깨알같이 적힌 송장을 하나하나 확인해 ‘내 관할 구역’ 물건은 수작업으로 솎아 내야 한다. 이 모든 작업이 무급이다.

“본사 입장은 배송 건당 수수료에 이 모든 대가가 포함돼 있다는 건데 말이 안 돼요. 물량은 하루가 다르게 느는데 수수료는 오르지 않으니까요.” 밥 먹을 시간도 없어 동료 기사들과 교대로 인근 백반집에서 후다닥 때우고 돌아오는 식이다. 

“터미널이라고 해 봤자 에어컨ㆍ난방은커녕 천막으로 하늘 가린 게 다예요. 지난겨울엔 그 한파 속에서 7시간을 꼼짝없이 서 있었어요.” 붙박이처럼 서서 물건을 골라내는 동안 손발 마디마디에 끔찍한 냉기가 파고들었다. 몇 시간에 한 번씩 마음먹고 다녀오는 화장실엔 휴지조차 없다.

“이제는 본사에서 나오던 ‘대리점 운영지원비’까지 택배기사에게 부담할 예정이라고 하더라고요.” 수입원이 줄어든 대리점은 이 돈을 메우기 위해 택배기사들을 상대로 수수료를 인상했다. 본사의 ‘을’인 대리점이 반대로 택배기사에 ‘갑질’을 한 셈이다.

고객 갑질, 대리점 갑질에 하다 하다 ‘슈퍼 갑’인 본사의 횡포까지 견뎌내야 하는 상황. 물리고 물리는 이 관계에서 짓밟히는 것은 결국 힘의 피라미드 가장 아래쪽에 자리한 택배기사들이다.

기자가 동행한 17일 오후 한 나절 동안 오씨는 100가구의 초인종을 눌렀다. 배달 시작 1시간 만에 처음으로 등장한 “감사합니다”는 오후 7시를 넘기도록 다섯 번을 채우지 못했다.  돈 한 푼 안 드는 간단한 인사치레지만 아파트 인심은 박했다.

“이제, 저녁 하러 가시지요?” “아니요, 오늘은 쉬지 않고 해도 밤 10시를 훌쩍 넘길 것 같아서요. 밥은 이따 밤에.” 끼니도 거른 채 바지런히 몸을 움직여 흘린 땀의 품격이, 노동의 가치가 이토록 가벼워도 되는 것일까.

기획, 제작, 사진 :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한국일보, 전국택배연대노조, 텀블벅 <딩도움> 프로젝트 '경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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