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꿈에 나타난 외할아버지(이원하 시인)
외할아버지가 맞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광대 근처에, 낯선 구멍 하나
어쩌다 눈이 세 개가 되셨냐고 물으니
고향이 보고 싶어서 이렇게 됐다고 하신다
아프지 않으셨냐고 물으니
나비가 앉았다 날아간 정도라며 웃으신다
내가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억장이 무너지는 듯해 침만 삼키고 있으니
까닭을 알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신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실향민이다. 매일 밤만 되면 북한과 어머니를 노래 부르시다가 그림 한 폭 남겨놓으시곤 돌아가셨다. 그림이라고 하기엔 지도에 가까운 그림이며 ‘되돌아본 내 고향’이라고 종이 모서리에 작게 적혀있다. 그림을 유산처럼 남겨 놓으실 때 유언으로 “나는 살아생전 다시 북한으로 가지 못할 것 같으니, 네가 나 대신 가주거라”라고 하셨다. 그림은 북한 황해북도 금천군 계정역 근처를 그린 그림이며 산과 철도가 보이는 걸 시작으로 철도 앞 뽕나무 밭과 발전소에서 나온 석탄재, 화력 발전용 연못, 석회 공장 등이 그려져 있다. 가보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사실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정교한 그림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왜 그림에 나온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걸까. 이해를 위한 충분한 설명이 없으셨다. 북한에 가면 나를 반겨줄 이 있는가. 그렇다면 반대로 나 먼저 통일전망대에 서서 북한에게 호기심 섞인 얼굴이 아닌, 연약한 손바닥 먼저 보여준 적 있긴 했는가.
오늘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이다. 역사적인 만남을 싱겁게 표현한 데는 약간의 이유가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이틀 전에 방문한 통일전망대와 임진각에는 내 또래인 2030세대를 찾기 어려웠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우리 측 평화의 집에 도착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간은 어느 세대만 집중하는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접속하여 2030세대의 지저귐에 집중해보았지만 그들의 삶과 풍경에서는 조금이라도 북한을 찾기 어려웠다. 남북정상회담 전날 2018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들을 만났다. 오고 가는 말들 중에서 남북에 대한 건 없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이 많은가, 아니면 그들이 우리에게 신경 써줘야 할 부분이 더 많은가.
나는 2030세대가 싱겁게 여길만한 사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이번 일에 대해 집중하였는가. 나만해도 북한에 대해 가졌던 관심은 김정은과 김정은 옆에 있는 한 여인 정도였다. 리설주의 추정 나이는 1989년생으로 나와 동갑이다. 그녀는 북한에서 ‘여사’로 불리고 나는 남한에서 ‘시인’이라 불린다. 그녀는 나라를 흔들고 가끔 세계를 흔들지만 나는 투명하고 향기 없는 마음만 흔든다. 이 접근 방법으로 과연 얼마큼 가까워졌는가. 서로 무언가를 확장하려다 넓혀진 자리에는 아직 포개질 것들이 많이 존재해 보인다.
2030세대가 함께 접근해볼 방법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사춘기 시절이 아직 선명하게 기억날 것이다.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바닥에서 바닥으로 이어진 한 공간에 가족들이 있었다. 분명 한 공간에 머물지만 그 공간엔 벽과 문이 존재했다. 우리는 매일 개인적인 시간을 위하여 짙은 색 문 안으로 들어가곤 했을 것이고, 서로 문 안에 있지만 약간의 소리만으로 각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피를 나눈 사이지만, 한 집에 살지만, 서로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 사소한 구실들이 많았을 것이다. 피를 나눴어도 얼굴을 마주치면 이상하게 어색하기도 했을 것이다. 거리로 따지면 가깝지만 마음으로 따지면 넓혀진 자리에는 밤하늘처럼 먹먹한 사랑이 있었을 것이고, 이것을 어떻게 포갤 것인가 한 번쯤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가끔 부모님께서 배달음식을 시켜주시면 우리는 방문을 열고 거실에 모이곤 했다. 그때 그 음식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한 공간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마음의 온도가 몇 도였는지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기억해낼 수 있다. 사춘기 시절은 불과 얼마 전이었을 테니까. 우리를 모이게 하는 것에는 굳이 ‘배달음식’일 필요가 없다. ‘음식’이면 된다.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 먹고 기분 좋게 사이를 풀자.
이원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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