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적이 드문 대로변에 커다란 사람이 작고 흰 강아지를 두고 간다. “착하지? 여기서 기다려. 곧 데리러 올게...” ‘착한’ 강아지의 길고 긴 기다림이 시작된다. 이 그림책은 그 기다림의 끝까지를 그린다.
기다림은 기대와 불안 사이의 행위이자 상태다. 기대를 품은 자는 설레며 기다리는 행위의 주체가 되지만, 불안에 휩싸인 자는 애태우며 기다리는 속절없는 객체의 상태에 놓인다. 기다림은 대개 그 사이의 어디께 있어서, 기다리는 자는 늘 설렘과 애탐으로 그 자리를 서성이게 마련이다. 우리의 흰 강아지는 어땠을까.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어 하얀 털빛이 검어지도록, 기다리라 한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오리라는 기대로 기다리고 기다렸으나,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으리라는 불안이 흰 강아지를 검게 태워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길가에 버려져 검은 강아지가 된 흰 강아지 앞으로,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더미 속에서 문득 또 다른 흰 강아지가 나타난다. 똑 닮은 둘은 금세 친구가 된다. “안녕?” “너 여기서 뭐해?” “주인님을 기다리는 중이야.” “쯧쯧...” “여기서 잠깐 기다리라고 했거든. 나랑 약속했어!” “이런 이런, 가엾은 친구 같으니라고.” “그때까지 나랑 놀래? 추울 땐 몸을 움직여야 한대.” “움직이면 배만 고플 텐데.” "날 따라해 봐. 기분이 좋아질 지도 몰라.”...

따라하기 놀이를 하며 말을 주고받다 보니 둘은 똑같은 처지였다. 그러나 흰 강아지는 이미 기대를 버린 듯 검은 강아지에게 묻는다. “그런데 진짜 너희 주인이 오면... 나는 어쩌지?” “걱정 마! 너도 데려가 달라고 말할게. 뭐든 들어주실 거야.” 검은 강아지가 확신에 차 대답할 때, 겨울이 된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함께 눈을 맞으며 흰 강아지가 말한다. “그런데 있잖아, 사실은 내 옆에... 네가 같이 있어줘서 참, 고마워...”
내리는 눈을 이불 삼아 잠들어 가는 두 강아지 사이에 버려진 거울이 놓여 있다. 그새 고물장수라도 와서 쓸 만한 것들을 집어갔는지 쓰레기더미는 한결 조촐해졌는데, 거울 앞에 잠든 검은 강아지는 여전히 버려진 채 흰 눈에 덮여 다시 흰 강아지로 되어 간다.

검은 강아지
박정섭 지음
웅진주니어 발행∙72쪽∙1만3,500원
밤은 무심히 깊어 가고 산책 나온 이들도 무심히 지나간다. 대로 저편 높은 아파트단지엔 새 건물을 올리는 공사가 한창인데, 그 위로 눈 내리는 하늘에 노란 별 하나가 떴다. 착한 강아지는 별이 되어 마땅하다. 허나, 죽어 슬픈 별이 된들 무엇하랴.
기대가 이뤄질 때 기다림은 그만큼의 기쁨이 된다. 그러나 불안이 현실이 될 땐 그만큼의 슬픔만 더할 뿐이다. 기다림이 더는 미덕이 아닌 총알 같은 세상에, 착한 강아지의 순정한 기다림은 한없이 아름답다. 하지만 그 끝을 목도하는 가슴은 아프고 또 아프기만 하다.
기다리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커다란 자들은, 기다려도 얻기 어려운 작은 이들에게 종용한다. “기다려라. 가만히 있어라.” 하지만 기다림은 대칭일 때나 미덕이 된다. 커다란 자들의 기다리라는 종용이 결국 작은 이들의 슬픔으로 귀결된 비대칭의 역사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겪어 왔는가.
홀로 애타는 고통을 견디기 위해 또 다른 자신을 불러내면서까지, 작은 강아지는 믿음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도록 커다란 자는 돌아오지 않고, 끝까지 곁을 지켜준 것은 작고 하얀 자신뿐이었다. 그러니 세상의 작고 흰 강아지들은, 더 이상 검은 강아지로 스러지지 말라. 차라리 흰 들개로 살아남으라. 더는 슬픈 역사가 싫다.
김장성 그림책 작가∙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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