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공대 연구진도 같은 주장
정밀조사단도 같은 결론 낼 땐
발전소 건설 재개 어려워질 듯
지난해 11월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이 이 지역에서 건설 중이던 지열발전소 때문이란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열발전소가 포항 지진에 영향을 미쳤을 거란 의견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제 유명 학술지가 ‘지열발전소가 포항 지진을 불러왔다’는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정부가 국내외 석학 14명으로 구성한 정밀조사단마저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될 경우 현재 중단된 포항 지열발전소 건설은 재개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부산대ㆍ고려대ㆍ서울대 등이 참여한 국내 공동연구진은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포항지진은 지열발전소의 유체(물) 주입으로 인한 유발 지진이 확실하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27일 자에 발표했다. 스위스 취리히공대 연구진도 인공위성 원격탐사자료 등을 활용해 “포항지진은 유발 지진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매주 발간되는 사이언스에 포항지진과 관련한 논문이 2건이나 실린 것이다.
국내 연구진에 따르면 2006~2015년 포항지진 진앙 반경 10㎞ 이내에선 총 6차례 미소지진(규모 1.2~1.9)이 발생했다. 미소지진은 규모 3.0 미만인 지진을 일컫는다. 그러나 지열발전 건설을 위해 2012년 9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두 개의 관정을 뚫고 물을 4차례 주입한 뒤에는 미소지진 발생 건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2015년 11월부터 포항지진 전까지 2년간 150차례나 됐다. 그 중에선 규모가 3.1에 달하는 지진(2017년 4월 15일 발생)도 있었다.
포항지열발전소는 경북 포항 흥해읍 남송리에 들어서게 될 국내 최초 지열발전소다. 2017년 말 완공 예정으로 2012년에 시추에 들어갔으나, 포항지진 발발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현재는 건설이 중단됐다. 해당 발전소 건설에는 포스코,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서울대 등이 참여하고 있다. 땅속으로 뚫은 주입정을 통해 물을 흘려보내면 물은 지열을 흡수해 수증기로 변하게 되고, 이를 다른 관정(생산정)으로 끌어올려 발전기를 돌리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또 포항지진과 포항지진 발발 전에 발생한 전진(前震)의 발생 위치가 지열발전을 위해 지하로 뚫은 두 관정의 끝(지하 4.5㎞)과 일치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논문 제1저자로 연구를 주도한 김광희 부산대 지질학과 교수는 “관정을 통해 주입된 물이 단층면과 단층면 사이로 흘러 들어가 평소 같으면 잘 고정돼 있던 단층면의 마찰력을 떨어트렸고, 맞닿은 단층면들이 미끄러지면서 포항지진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2006년 스위스 바젤에서도 지열발전소가 가동한 지 얼마 안 돼 규모 3.4의 지진이 발생했었다.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관정에 상대적으로 낮은 수압을 쓸 경우 규모 3.5 이상의 유발 지진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었는데, 포항지진은 이마저도 무색하게 만들었다”며 “유발 지진 발발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면 지진을 유발하지 않고도 물을 주입할 방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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