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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마음의 실향민들
1세대 중 80세 이상 34만여명
“남북회담으로 평화 계속된다면
언젠가 여동생 만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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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부푼 젊은 탈북자들
“평화ㆍ화해의 분위기 이어지고
北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면
탈북자에 새로운 가능성 열려”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읍 오류리 569번지. 학교를 마친 뒤 싸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여섯 살 여동생 성애가 “오빠~” 하고 부르며 통통 뛰어 나왔다. 열 살 터울에 유독 가족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성애도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되었을 테지만 김성호(80) 할아버지 기억 속에는 여전히 어린 성애만 선하다.
남북정상회담에 온 국민이 들뜬 마음이지만 그리움과 서러움이 뒤엉킨 복잡한 심정으로 27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과 탈북자들, 이들은 저마다의 기억을 떠올리며 정상회담 하루 전날을 초조하게 보냈다.
김 할아버지는 배추밭에 김장거리를 가지러 갔다가 징집 소식에 어머니와 여동생을 둔 채 황급히 아버지와 단둘이 고향을 떠났다. 남한 정착 이후 정신 없이 살다가도 문득문득 그리움이 사무쳤다. 혹시라도 죽었을까, 두려움에 생사를 확인할 엄두를 못 내 한창 이산가족 상봉이 이어질 때도 그저 TV를 보며 밤새 오열하는 일을 반복, 뒤늦게야 이산가족 신청을 했다. “1991년 돌아가신 아버지는 ‘성호야 꼭 네 동생 성애를 찾아다오’라며 차마 눈을 감지 못했어요.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평화가 계속된다면 언젠가 여동생을 만날 수 있을까요?”
두고 온 가족이 없더라도 실향민에게 북한은 여전히 ‘그리움’ 그 자체다. 1947년 당시 경기 장단군 장도면 오음리에 살던 11세 소년은 이제 80대 노인이 됐지만 다정한 사람들이 모두 한 가족처럼 지내던 고향 풍경을 어제처럼 생생히 떠올린다. 윤일영(82) 할아버지는 “고향이란 곳은 슬픈 일 괴로운 일이 있으면 두말 않고 거둬주는, 어머니 품과 같은 곳”이라며 “죽기 전에 딱 한번만 북에 있는 부모님 산소를 찾아 뵙고 혼자 살며 쌓였던 한을 모두 털어낸 뒤에 한없이 통곡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 할아버지를 비롯, 1세대 실향민 중 80세 이상은 34만명으로 추정된다. 숫자가 줄어드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김지환(65)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 회장은 “1세대가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고향 땅을 밟아볼 수 있도록 남북 교류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소망했다.
그리움으로 점철된 실향민의 마음과 달리, 젊은 탈북자들에게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또 다른 가능성과 기대를 부풀게 한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으로 2007년 탈북해 북한 전통 음식인 ‘두부밥’을 응용한 요리로 성공, 음식사업가로 자리잡은 강민(31) 듀밥 대표는 “남북 관계가 경직돼 있을 때는 아무래도 탈북자에 대한 시선이 적대적인 게 사실”이라며 “평화와 화해 분위기가 이어지고 북한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자연히 북한을 잘 아는 탈북자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23년을 북한에 살았던 이위력(30)씨는 통일한국에서 ‘탈북민 1호 경찰’을 꿈꾼다. 현재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과학수사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이씨는 “통일은 되어야만 하고,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경제나 정치 논리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통일을 바란다”고 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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