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100억원대 손실을 끼치고 회삿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혐의를 받는 이석채 전 KT회장이 파기환송심(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다시 받는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 김우수)는 26일 이 전 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론 이 전 회장이 회의 자금을 빼내 착복할 목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거나, 비자금 사용의 주된 목적이 개인적 용도를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전 회장은 2009년 1월∼2013년 9월 회사 비등기 임원들에게 지급되는 수당 중 일부를 돌려받는 식으로 11억원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해 경조사비 등에 사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로 기소됐다. 2011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KT가 이 전 회장의 친척과 공동 설립한 ㈜OIC랭귀지비주얼 등 3개 벤처업체의 주식을 의도적으로 비싸게 사들이게 해 회사에 총 103억5,000만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경법상 배임)도 받는다.
앞서 1, 2심은 배임 혐의에 대해선 “합리적 의사결정이었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횡령 혐의에 대해선 엇갈린 판단을 했다. 1심은 “비서실 운영자금이나 회사에 필요한 경조사비, 격려비용 등에 쓴 만큼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횡령 혐의를 무죄로 봤다. 반면 2심은 “대표이사에게 배정된 업무추진비를 통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자금을 조성했다”라며 징역 1년6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후 대법원은 배임 혐의에는 무죄를 확정했지만, 횡령 혐의에 대해선 “비자금에서 개인적 목적을 위해 사용된 금액을 구분하기 어렵고 회사를 위해 지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무죄 취지로 이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이날 파기환송심 선고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맞게 다시 재판을 한 것이다.
이 전 회장은 선고 후 법정을 나서며 “상식에 맞는 판단을 해 준 사법부에 감사하다”며 지난한 법정투쟁을 사실상 끝낸 소회를 밝혔다. 그는 2013년 10월부터 검찰의 수사를 받은 뒤 지금까지 재판을 이어오고 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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