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나가사키 드레스덴 뮌헨 런던 난징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 서울 평양…. 저 도시들은 인간과 인간성, 문명과 공존 번영의 찬란한 약속들과 더불어 환기해야 할 전쟁과 내전 학살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직ㆍ간접적 희생자들의 기억과 증언, 문학과 음악, 미술 등 예술 작품들…. 그 상처의 기억과 상징은 인류가 인간의 이름으로 미래를 말하기 전에 먼저 해명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제주와 광주도 포함될 수 있겠다.
1937년 4월 26일, 내전(1936~39) 중이던 스페인 북부 바스크 주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에 독일 폭격기들이 들이닥쳤다. 융커 52, 하인켈 51 폭격기와 전투기 대대는 인구 7,000명 남짓하던 게르니카에 250kg 고폭탄과 50kg급 폭탄, 1kg 소이탄까지 무려 24톤을 퍼부었다. 마침 장날이어서 마을 중심부에 몰려 나온 시민들은 두 시간 넘게 이어진 폭격과 기총 사격에 속절없이 숨져갔다. 이 공습으로 1,654명이 숨지고 900여 명이 부상했다.
게르니카는 파시스트 국민군과 맞선 공화국 세력권이기는 했지만 대단한 전략적 요충지도 군수도시도 아니었다. 내전 초 수도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이어지던 공방이 북동부로 확산됐고, 서쪽으로 20km 남짓 떨어진 북부 주요 도시 빌바오가 있긴 했다. 빌바오는 독일 지상군과 공군이 스페인 본토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장악해야 하는 관문이었다. 왜 하필 게르니카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대다수 기록은 독일이 신형 고폭탄 성능 등 공중폭격의 위력 시험장으로 게르니카를 선택했다고 적고 있다.
파카소가 그 해 6월 파리 국제박람회 출품작으로 그린 ‘게르니카’는, 나치 독일과 스페인 파시스트의 만행을 고발한 작품일 테지만, 국제박람회라는 번영과 복락의 기획에 대한 회의와 냉소의 의미로도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피카소 작품 원본은 마드리드의 레니아 소피아 미술관에 전시돼 있고, 게르니카의 주택가에는 복사본 타일 벽화가 붙어 있다고 한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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