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불능... 추가 치료는 무의미”
英 법원, 의료진 손 들어줘
교황청은 “치료 지원하겠다”
찰리 가드 사례 이어 다시 논란
생사의 경계를 과연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존엄사가 허용되는 영국에서 희귀병에 걸린 두 살 배기 아기의 연명치료 중단 여부를 두고 또 다시 논쟁이 불 붙고 있다.
아기의 해외 치료를 허용해달라는 부모의 간청에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발 벗고 나섰지만, 영국 법원은 치료가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의료진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과 의료진은 아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길이라는 입장이지만, 부모 의견까지 거스르며 아기의 생명결정권을 좌우하는 게 맞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번 재판은 퇴행성 뇌 신경 질환을 앓는 23개월 된 영국 아기 알피 에번스에 대한 병원 측의 연명 치료 중단 권유를 부모가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알피 부모는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병원에서 새로운 치료를 시도해 보겠다고 했지만, 영국 법원은 이 역시 불허했다.
BBC 방송은 25일(현지시간) 재판 결과에 대해 알피의 건강 상태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며 양측의 입장을 전했다. 알피 부모는 알피의 투병을 고통의 과정이 아닌 생존을 위한 싸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병원 측의 연명 치료 중단 권유는 사형 선고에 다름 없다고 맞섰다. 알피의 아버지 톰 에번스(21)씨는 “인공호흡기 없이 20시간 가량 혼자 호흡할 수 있을 만큼 처음보다 상태가 크게 호전됐다”고 주장했다. 치료를 포기한 영국 병원 대신 교황청이 운영하는 로마의 아동전문병원 제수 밤비노 병원에서 치료를 받겠다고 했고, 이탈리아 정부는 알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겠다며 적극적으로 지원 사격에 나섰다.
그러나 영국 법원은 냉정했다. 재판부는 2016년 12월부터 알피를 돌봐온 리버풀의 올데 헤이 병원 의료진과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알피가 이미 뇌 기능이 심각히 손상돼 회생 불능의 반 식물인간 상태에 놓여 있다”며 “추가 치료는 소용이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대신 알피를 집으로 데려가 남은 시간을 부모와 함께 마무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알피 판결은 지난해 희귀병을 안고 태어난 뒤 11개월 만에 연명치료 중단 판결을 받고 숨진 영국 아기 찰리 가드 논란과 꼭 닮아 있다. 당시에도 찰리 부모는 연명 치료 중단을 권유한 영국 의료진 요구를 거부하고, 미국에서 실험적 치료를 받거나 집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모두 거부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영국 법원의 판단은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서 규정한 ‘아동의 최선의 이익 우선(Best interest of the child)’ 원칙에 근거한다. 아무리 부모라도 아이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해주지 못한다고 판단하면, 친권보다는 국가의 개입이 앞설 수 있다는 논리다. 재판부는 부모가 요구하는 해외 치료를 받느라 알피가 추가로 고통을 겪는 것보다,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며 생을 마무리하는 길이 자기결정권에 부합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반론도 적지 않다. 당장 스스로 판단하고 의사 표시를 정확히 할 수 있는 어른과 달리 아기의 자기결정권을 누가 재단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최근 알피의 아버지를 직접 만나 위로한 교황은 “삶의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끝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유일한 주관자는 하느님뿐”이라며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는 게 우리의 의무”라고 밝혔다.
한편 알피 부모가 해외 치료를 불허한 하급심 법원 판결에 불복함에 따라 영국 항소법원은 25일(현지시간) 오후 이 사건을 심리할 예정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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