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1992년 12월 11일 부산 초원복집. YS와 DJ가 격돌한 제14대 대선을 1주일 앞두고 김기춘 당시 법무부 장관이 지역 기관장들을 소집했다. 현직 장관이 부산시장, 부산지검장, 부산경찰청장 등을 모아 놓고 노골적으로 지역감정과 관권선거를 부추긴 사실이 폭로되면서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진보 진영에선 “선거는 이겼다”라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결과는 거꾸로였다. YS가 영남에서 68% 몰표를 얻어 당선됐다.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층이 똘똘 뭉친 것이다.
▦ 드루킹 사건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이 연루됐다. 여권에 악재가 분명하다. 여론은 당연히 드루킹의 댓글 조작에 부정적이다. 야 3당은 특검 도입 등을 요구하며 파상 공세다. 최근 세 곳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0~60%가 특검 도입에 찬성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소폭 상승했다. 70% 안팎의 견고한 지지율이다. 보수 텃밭인 TK 지역에서도 문 대통령 지지율은 6주 연속 50%를 넘고 있다. 지방선거에 위기를 느낀 문 대통령 지지층이 오히려 결집하는 양상이다.
▦ 야당의 드루킹 공세가 왜 통하지 않는 걸까. 우선 자유한국당에 대한 불신이 워낙 크다. 보수 유권자조차 홍준표 체제로는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여긴다. 그러니 여당이 아무리 잘못해도 한국당에 반사이익이 가지 않는다. 국민 다수는 여당이 잘못을 하긴 했으나 문 대통령과 직접 연관성이 없는데다 보수정권 9년과 비교하면 훨씬 잘하고 있다고 본다. 보수 우위인 전통적 미디어의 영향력 저하도 보수층의 응집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진정성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고공 지지율의 근간이다.
▦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 지지율은 68.5%. 국정원 댓글 조작 등 온갖 악재에도 국정운영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했다. 높은 지지율에 도취해 오만에 빠지는 순간 위기가 찾아왔다. YS의 취임 1주년 지지율은 69.5%로 더 높았으나 권력 다툼과 외환위기가 겹치면서 순식간에 몰락했다.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이 여권의 실수를 덮고 진보층의 이탈을 막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개인기만으론 한계가 있다. 문 대통령이 지지율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내각과 여당이 잘해야 한다. 국민 삶을 바꾸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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