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수동적 대립의 장에서
능동적인 협력의 무대가 될 것
북미와 다 통하는 한국 역할 중요
북한과 대화의 동력 유지해야”
중국의 대표적인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진징이(金景一) 베이징(北京)대 교수는 ‘2018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냉전시대의 산물인 북핵과 정전협정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주인인 남북이 한반도 문제를 주도해 가는 역사적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진 교수는 지난 22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ㆍ미사일 실험 중단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선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면서 “남북ㆍ북미 정상회담이 성과를 내려면 남ㆍ북ㆍ미 간 신뢰 구축이 가장 중요하며 문재인 정부는 이 과정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_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인가.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 등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논의한다는 점에서 지난 두 차례의 정상회담보다 의미가 크다. 근대사 이후 한반도는 매번 외적 요소인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에 의해 진로가 결정돼 왔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는 수동적인 지정학적 대립의 장에서 능동적인 지경학(地經學)적 협력의 무대가 될 것이다.”
_핵심 의제는 역시 비핵화일 텐데.
“비핵화와 평화체제, 남북관계 등 세 가지 의제 중 핵심은 비핵화이다. 물론 비핵화 문제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남북 간 협력ㆍ공존과 연동돼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논의가 완결될 수는 없지만 비핵화에 대한 분명한 의지와 원칙적인 프로세스 등 큰 틀의 합의는 가능할 것이다.”
_김정은 위원장이 대화에 적극 나선 이유는 뭔가.
“김 위원장은 집권 후 첫 연설에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실제 지난 6년간 농장ㆍ공장ㆍ기업의 적극성을 동원하고 시장을 풀어 주는 등 과감한 개혁 조치로 경제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계속되는 국제사회의 제재로 북한 경제는 ‘버티면서 견디는 모드’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핵무력 완성을 위해 이를 감수해 온 김 위원장 입장에선 이제 ‘인민의 만복이 꽃피는 사회주의 경제강국’을 위해 새로운 로드맵을 내놓을 때가 된 것이다.”
_실제 북한 내부의 분위기는 어떤가.
“작년 11월에 마침 30여년 만에 열린 ‘조선 사회과학자 대회’를 방청했다. 이틀간 박광호 박태성 등 새로 선출된 노동당 부위원장들을 포함해 많은 학자들의 발언을 들었는데 핵ㆍ경제 병진노선이나 핵무력 등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국내 문제에 집중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자신감이 넘쳤고 사고도 많이 개방돼 있었다. 김정은 시대는 이전과 확실히 달라 보였다.”
_북한이 핵실험 중단과 핵실험장 폐기까지 선언했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아주 강력하게 시사하고 각인시켰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그간 모든 것을 잃으면서 핵무력을 확보했고 이 때문에 정말 비핵화 의지가 있느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이번 선언은 경제적 어려움을 모면하려는 책략이 아님을 보여 준 것이다.”
_북한이 미국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주장을 받아들인 건가.
“북핵 문제를 일순간에 해결할 수는 없다. 해결은 단계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 핵심은 동시적 해결이다. CVID는 비핵화의 최종 결과이자 미국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원칙이다. 큰 틀에서 이에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미국이 움직일 것이다.”
_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합의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종전선언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다. 남북 간에는 상호불가침의 뜻을 담은 기본합의서와 6ㆍ15 및 10ㆍ4 공동성명 등이 있는데 이번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지향한다는 차이가 있다. 전쟁의 위협을 피부로 느끼는 남북이 한반도의 주인으로서 평화체제의 문을 연다는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_북한의 경제노선이 성공하려면 한국ㆍ중국과의 경제협력 확대가 필수인데.
“북한은 최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ㆍ경제 병진노선을 경제노선으로 전환했다. 문제는 유엔 안보리 제재 밖의 경협도 비핵화의 진전 없이는 큰 폭으로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 북한은 대북제재가 풀리기만 해도 일대 도약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 북한이 분명한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게 관건이다.”
_평화체제 전환과 대북 지원 등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한데.
“중국은 한반도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이 이전에는 보다 독자적이었고 그에 따른 한계도 드러냈다. 앞으로는 한국과 보다 많이 협력하면서 남북과 중국의 협력이 동북아 협력의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_남북ㆍ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문재인 정부가 가장 유념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은.
“남북ㆍ북미관계에서 핵심은 상호 신뢰를 쌓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ㆍ미국과 다 통하는 한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어떤 경우라도 북한과 대화의 동력을 유지해야 한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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