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그룹 JBJ 마지막 무대
방송사 기획 아이돌 늘고, 연습생 육성 회사는 감소
“팬들에 상처ㆍ음악 질적하락 불러” K팝 부작용 우려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2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 아이돌그룹 JBJ는 마지막 공연에서 시인 김춘수(1922~2004)의 대표작인 ‘꽃’을 낭송했다. 멤버인 권현빈, 김상균, 김동한, 김용국, 노태현, 켄타가 돌아가며 한 소절씩 읊었다. 아이돌이 춤을 추다 느닷없이 시 낭송이라니.
사연이 있다. JBJ는 죽을 뻔 하다 살아난 기사회생의 아이콘 같은 팀이다. 여섯 멤버는 지난해 방송된 케이블채널 Mnet 오디션프로그램 ‘프로듀스101 시즌2’ 톱11에 들지 못했다. 데뷔의 기회를 놓쳐 다시 어두운 연습실로 돌아가야 했던 이들을 무대 위로 끌어 올린 이는 프로그램 시청자들이었다. 팬들은 워너원(톱11로 구성) 합류에 실패한 여섯 도전자를 가상 그룹으로 꾸려 이들의 데뷔를 바랐고, 꿈은 현실이 됐다. JBJ는 팬들이 붙여준 ‘정말 바람직한 조합’에서 단어 앞 글자를 알파벳으로 하나씩 따 팀 명을 지은 뒤 지난해 10월 1집 ‘판타지’로 데뷔했다. 각자 소속사가 다른 것 등의 문제로 이들에게 주어진 활동 기간은 7개월. 시한부 그룹으로 데뷔했지만 JBJ에게 무대는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연습생이라고 다 가수가 되는 건 아니다. 요즘엔 연습생 되기도 어렵다. 2016년 연예기획사 중 연습생을 육성하는 곳은 13.4%에 불과했다. 2014년(18.2%)과 비교해 4.8%포인트가 줄었다. 2016년 연습생 계약 기간(3년 3개월)도 2014년(약 3년 4개월)보다 1개월 가량 단축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 초 발표한 ‘2017 대중문화ㆍ예술 산업 실태 조사’ 결과였다.
K팝 한류가 미국과 일본 등에서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지만, 업계 현실은 여전히 차갑다. 마지막 무대에서 JBJ의 김동한은 “앞으로 사실 너무 막막하다”며 울먹였다. 고용불안과 불투명한 미래에 떨고 있는 가요계 ‘미생’들의 현실이다. 팬들의 호명으로 꽃이 된 JBJ는 그들에게 ‘꽃’을 바치고 떠났다. 여섯 청년과 관객들은 같이 울었다.
JBJ를 비롯해 아이오아이(8개월), 워너원(1년 6개월), 유앤비(7개월~1년 3개월)까지. K팝 시장엔 그룹 결성 때부터 해체 시기를 정해 놓고 데뷔하는 시한부 아이돌그룹이 넘쳐나고 있다. 모두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데뷔한 팀들이다.
큰 관심 속에 태어났지만 열광의 유효기간은 짧다. 시한부 아이돌그룹은 팀의 음악적 색깔을 정해두고 멤버를 꾸린 여느 팀과 비교해 음악적 통일성이 약하기 마련이다. 음악보다 멤버들의 매력에 기대 결성된 탓이다. “시한부 아이돌그룹 프로젝트는 팬들에겐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전략”(김성환 음악평론가)이자 “장기 계획의 부재에 따른 음악의 질적 하락”(김윤하 음악평론가)으로 생명력 넘치는 K팝 시장에 부작용을 줄 수 있다. 가요기획사들이 방송사의 기획에만 기대지 않고 더 주체적으로 나서 팀을 기획하고 발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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