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한강멍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2014년 처음 시작한 이 대회에서 9세 초등학교 학생이 우승해 크게 관심을 끌었다. 멍때리기란 아무 생각없이 멍하게 있는 것을 말한다.
멍때리기를 가장 잘 하는 사람이 우승을 한다. 그 기준은 심박동수를 측정해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사람이다. 멍때리기를 잘 하면 심박동수가 안정되기 때문이다. 불안하거나 감정의 기복이 심하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심장이 빨리 뛰거나 호흡이 가빠지지만, 안정이 되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몸이나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충격적인 사건, 사고의 홍수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외부의 자극을 처리하고자 뇌는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 휴식 없이 돌아가는 기계가 오래 가지 못하고 망가지듯이, 쉬지 못하는 뇌는 결국 탈진해버릴 것이다.
인위적인 자극이 많지 않는 조용한 산사에서 지내다 보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는 외부의 자극이 적기 때문에 뇌가 자극을 처리하는 시간을 줄여주어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휴식이 필요하다. 외부 자극을 처리하는 과정이 없이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활동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1992년 위스콘신대학 학생이었던 비스왈은 기능자기공명영상(fMRI) 연구를 하는 중 쉬는 동안에도 뇌는 정보를 활발히 교환하고 활동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뇌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 어떤 작업을 수행할 때 활성화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쉬는 동안에도 뇌는 무언가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워싱턴대학 신경과학자 라이클 교수팀은 쉬는 동안에도 뇌의 특정 신경망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이 유명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이다. 마치 컴퓨터가 아무런 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전원을 완전히 차단하여 꺼지지 않는 한, 내부에서 기본적인 작동을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뇌도 겉으로는 작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서로 관련되는 신경세포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내측전전두엽, 후대상피질, 해마, 모이랑 등의 부위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 부위들은 외부의 자극이 오면 오히려 활동이 줄어 든다.
휴지기에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발히 활동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외부의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아무런 작업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신경망이기에 주로 백일몽,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과 관련된 기억회상, 미래에 대한 계획, 정서와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업무를 볼 때나 일을 할 때에는 그 당시에 순간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있을 때는 자신과 관련된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기획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되기 때문에 창의력이 증가한다는 주장도 있다. 휴식 없이 항상 자극에 노출되어 뇌가 그 자극을 처리하는데 시간을 보내게 되면 정작 중요한 정서적인 정보,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들의 정리, 미래에 대한 생각 등을 뇌가 하지 못한다.
우울증, 치매, 자폐증, 강박증, 파킨슨병 등의 질환에서 휴지기 뇌기능에 이상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뇌가 쉬고 있는 상태에서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면, 외부의 자극이 있을 때도 적절히 정보를 처리할 수 없다. 이런 비정상적인 뇌기능으로 인해 병적인 증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현대인은 잠깐 쉬는 동안에도 스마트폰을 하거나 무언가를 한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냥 빈둥빈둥 거리거나 멍하게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시간 동안에 뇌는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기획하며, 사람들과 관계와 자아를 강화할 힘을 키운다. 멍때리기가 필요한 이유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과제를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뇌가 스스로 휴식을 취하며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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