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반 대중입니다. 저는 일반 대중이 가장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 일반 대중 속에서 시종일관 아와야 노리코로 있자, 죽을 때까지 변치 않은 나 자신을 지켜나가자, 하고 생각하면 용기가 솟아나요.”
사노 요코(1938~2010)다운 토로다. 아야와 노리코는 1930년대 가수. 전쟁통에 군국주의자들이 근검절약을 외쳐대고 그에 맞춰 국방부인회 여성들이 가위로 남의 옷자락이나 파마한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잘라대던 시절, 화려한 화장과 사치스러운 드레스를 고수했던 인물이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이웃의 쑥덕거림 속에서도 사노는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 화려한 매니큐어, 노란 자동차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이 에피소드의 제목은 ‘하하하, 내 마음이지’다.
밀리언셀러 그림책 ‘100만번 산 고양이’(비룡소)로 유명한 사노의 에세이들을 그림책으로 새단장한 ‘요코씨의 말’(민음사) 1ㆍ2권이 출간됐다. 그림책 작가로만 알려졌던 사노는 말년에 암 진단 받은 뒤 썼던 에세이 ‘사는 게 뭐라고’ㆍ‘죽는게 뭐라고’(마음산책)가 2015년 번역, 소개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에세이스트로 재조명됐다. 기관총 같은 수다에다 ‘정의는 싫어’, ‘진실은 이것이야 말하는 것도 싫어’라고 직설적으로 외쳐대는 글들이 카타르시스를 줬다. 얼마 전 배우 소지섭이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사노의 책을 읽는 장면이 방영되면서 다시 눈길을 끌었다.
일본의 사노 팬들도 아쉬웠던 모양이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사노의 에세이 가운데 엄선한 글을 골라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프로그램의 인기에 힘 입어 책까지 내놨다. 에세이 가운데 좋았던 것을 뽑다 보니, 한국에 채 번역되지 않은 책에서 나온 새로운 에피소드들도 많다.
‘하하하, 내 마음이지’와 함께 한국에 처음 공개되는 글 ‘아 힘들어’에서 사노는 ‘못 생긴 여자들’과의 동지애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을 한참 재미있게 늘어놓더니 “스스로를 북돋운다는 건 참 힘든 일인 것 같다”며 더 큰 웃음을 준다. 오빠의 죽음과 ‘100만번 산 고양이’의 탄생 비화, 그리고 암 진단으로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자신에 대한 명료한 시선은 또 봐도 가슴 저리다. 민음사는 “NHK 방송분은 모두 4권의 책으로 출간됐는데, 우선 2권을 소개한 뒤 나머지 2권 소개 여부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