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ㆍ저출산 동시에 발생
산업 무너지며 젊은층 빠져나가
고용위기지역 지정된 곳들
군산ㆍ거제ㆍ통영 등 조선업 공통점
충남 서천군은 과거 한국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이었다. 일제시대 이곳에 장항제련소가 세워지면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학교ㆍ식당ㆍ물류 등 기반시설도 들어서면서 1960년대 인구는 웬만한 도시 부럽지 않은 16만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1989년 제련소 폐쇄 이후 서천군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1990년 10만545명이던 인구는 2016년엔 5만3,880명으로 반토막 났다. 아이 울음소리도 끊겨 마산면의 경우 지난해 출생아가 한 명도 없었다.
급격한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 가능성이 바다를 접한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산물 수입 증가 등에 따른 어업 인구 감소, 조선업 등의 장기 침체로 연안 지역 경제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연안 일대에 ‘지방 소멸’ 현상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22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해수원)이 공개한 지역쇠퇴지수에 따르면 서천군처럼 연안 지역 전체 기초자치단체(시ㆍ군ㆍ구) 74개 가운데 서천군처럼 소멸 위기에 처한 곳은 30개(40.5%)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내륙 지역 시ㆍ군ㆍ구(154개)의 소멸 위기 지역 비율(56개ㆍ36.4%)보다 높은 수치다. 지역쇠퇴지수는 65세 이상 인구 대비 가임 여성(20~39세) 인구를 뜻하는 값으로, 지수값이 0.5 미만이면 주민 유출, 출생아 감소로 인구 재생산이 어려운 소멸 위기 지역으로 분류된다.
연안 지역 중 지역쇠퇴지수가 가장 낮은 곳은 전남 고흥군(0.17), 경남 남해군(0.18), 전남 신안군(0.20), 경북 영덕군(0.20), 전남 보성군(0.20), 충남 서천군(0.22) 순으로, 어업 종사 가구가 많은 군 단위 지역을 중심으로 인구 감소가 두드러졌다. 이들 지역의 인구 감소는 수산물 수입 증가, 조업 환경 악화에 따른 어촌 경제의 위축과 관련 깊다. 실제 전국 어가(漁家) 인구는 2010년 17만1,191명에서 지난해 12만1,734명으로 5만명 가까이 감소했다. 박상우 해수원 부연구위원은 “어업, 수산업 위축으로 어촌의 소득 및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는 데다, 국토 외곽에 위치해 있어 젊은층이 정착하기가 어렵다”고 연안 인구 감소 원인을 진단했다.
연안 지역 도시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조선업, 수출제조업 중심의 산업화에 힘입어 연안 도시지역은 ‘성장의 상징’이었지만 관련 산업의 장기 침체로 인구가 급감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3~2017년) 부산(-9만6,152명) 창원(-5만5,861명) 포항(-1만2,704명) 울산(-1만4,526명) 등 연안 시(市) 지역도 예외없이 순이동(전입-전출) 인구가 감소했다.
연안 도시의 인구 감소는 지역 일자리 부족 탓이다. 지역내총생산(GRDP)을 보면 부산은 서울의 23%, 울산은 20% 수준에 그친다. 인구 급감 속에 최근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된 전북 군산, 경남 거제ㆍ통영ㆍ고성ㆍ창원, 울산 동구 등은 조선업이 호황을 누렸던 연안 지역에 위치한 공통점이 있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과거 수출입에 유리해 도시화ㆍ산업화의 수혜를 입었던 항만도시들이 지금은 수도권, 세종시, 내륙 혁신도시 등에 사람이 몰리면서 괴사 직전에 몰렸다”고 말했다.
연안의 위기를 해결하려면 지금처럼 산업 구조조정, 농어촌 정주여건 개선, 저출산 대책 등 파편화된 정책이 아니라 지역 재생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도쿄 등 대도시 인구 집중과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지방도시 소멸에 대응해 2014년 ‘마을, 사람, 일자리 창생법’을 제정하고 내각부, 국토교통성, 총무성, 농림수산성이 총동원돼 관련 정책을 챙기는 일본이 대표적 사례다. 서중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부처들이 개별적으로 지방인구 감소 해결에 나서다 보면 종합적인 정책 효과를 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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