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안정 목표 명시 방안 연구”
이주열 총재 발언 엇갈린 평가
“한국은행 목표에 고용안정을 명시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는 이주열 한은 총재의 발언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은 통화정책 목표에 현행법이 규정한 ‘물가안정' ‘금융안정’ 외에 실업률 등 고용시장 지표를 관리하는 ‘고용안정’을 더할지가 쟁점인데, 경제상황 변화에 맞춰 중앙은행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는 긍정론과 한은의 중립성과 통화정책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비판론이 엇갈리고 있다.
주요20개국(G20) 중앙은행총재 회의 등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이 총재는 21일(현지시간) 국내 취재진과 간담회를 갖고 “고용은 금리로 직접 조절하지는 못하지만 정책적으로 중요성을 둬야 할 목표로, 일부 중앙은행들은 (이미)고용을 정책목표로 두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다만 “금리정책을 갖고 여러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어렵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펴는데 제약이 있기 때문에 아직은 조심스럽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현재 중앙은행 목표에 고용을 포함한 국가는 미국, 호주 등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경우 물가안정과 함께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선에서 고용을 극대화하는 ‘완전고용’을 통화정책 양대 목표로 삼고 있다. 예컨대 노동시장에 유휴인력이 많을 경우엔 금리를 내려 경기 활성화에 나서는 식이다. 연준은 물가상승률은 연 2%라는 목표치를 제시하는 반면, 완전고용에 대해선 고정된 목표치를 두지 않고 실업률 등 다양한 지표를 활용한다.
이 총재의 발언은 한은이 금융뿐 아니라 실물경제 영역인 고용 문제에도 적극 관여해야 한다는 학계, 정치권 등의 주장에 대한 입장 표명으로 풀이된다. 현재 국회에는 한은 설립 목적에 ‘고용안정’과 ‘적정 인구수 유지’를 명시하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이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저물가 상황도 한은이 통화정책 목표 조정을 검토하는 배경으로 분석된다. 금리를 낮춰 성장률을 높였는데 물가는 예전과 달리 낮은 상태에 머물다 보니 통화정책 지표로서 물가의 효용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은의 고용 목표 설정을 두고 찬반은 엇갈린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중앙은행 역할을 확대하는 것은 세계적 흐름”이라며 “고용 부진이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만큼 한은도 문제 해결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각에서는 ‘한은 통화정책은 물가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정부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한은법 제4조)는 법 조항을 들어 한은이 이미 실물경제 증진 책무를 지고 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반론도 적지 않다. 한은의 거의 유일한 정책 수단인 통화정책에 여러 목표를 설정할 경우 정책 효과를 제대로 낼 수 없다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이 함께 오를 경우 시장에선 한은이 물가 억제에 집중하던 때와 달리 고용 안정을 위해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면서 근로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기업을 제품가격을 올리는 등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의 중립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홍범 경상대 교수는 “한은이 (돈을 풀어)고용 증대에 나설 경우 정부의 관련 정책과 성과를 구분하기 어려워 한은의 책임성을 따지기 곤란해지고 결국 한은 독립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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