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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정 "3년째 채식... 글쓰고 기타 연주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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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정 "3년째 채식... 글쓰고 기타 연주도 해요"

입력
2018.04.2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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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임수정은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명필름ㆍCGV아트하우스 제공
배우 임수정은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명필름ㆍCGV아트하우스 제공

배우 임수정(39)은 시간의 흐름에 조응하는 법을 안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선 여전히 시간을 읽을 수 없었지만, 그 내면에선 나이 듦이 주는 변화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변화는 작품과 배역을 고르는 기준뿐 아니라 삶의 태도와 가치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도 포함한다. 영화 ‘당신의 부탁’(상영 중)이 임수정의 특별한 선택으로 다가오는 것도 그래서다.

‘당신의 부탁’은 사고로 남편을 잃은 서른두 살 효진(임수정)이 홀로 남겨진 남편의 아들인 열여섯 살 종욱(윤찬영)과 가족이 돼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혈육이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모성은 절대적인 게 아니라고,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최근 서울 명동 CGV씨네라이브러리에서 마주한 임수정은 “1인가족, 재혼가족, 입양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하지만 우리 인식은 아직 현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내가 그랬듯 관객들도 포용적인 시선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효진 말고도 많은 ‘엄마’가 나온다. 난데없이 아들이 생긴 딸을 걱정하는 효진의 엄마 명자(오미연), 첫 아이를 낳은 효진의 친구 미란(이상희), 10대 나이에 덜컥 아이를 임신한 종욱의 친구 주미(서신애), 난임으로 아이 입양을 기다리는 여성 서영(서정연), 오래 전 종욱을 잠시 키웠던 또 다른 엄마 연화(김선영)까지. 영화는 엄마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며 모성을 탐구한다. 영문 제목도 ‘마더스(Mothersㆍ엄마들)다.

임수정은 “몇 년 전부터 엄마 역할을 자연스럽게 기다려 왔다”며 “아직 엄마가 돼 보진 못했지만 효진이 경험하는 당혹감과 난감함은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효진은 종욱을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예요. ‘남편 아들’일 뿐이죠. 하지만 어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혼자인 그 아이를 보면서 연민과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효진 또한 혼자라는 외로움과 상실감에 힘들어하고 있으니까요.”

효진과 종욱은 가족이 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서먹한 사이이지만 그렇다고 불편하지는 않다. 어쩌면 그게 더 현실적인 모습 아닐까. “두 사람은 쭉 그렇게 살 거 같아요. 종욱이 효진을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가족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감정 과잉 없이 담백한 이야기는 임수정의 성향과도 잘 맞는다.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어떤 분이 이런 시나리오를 썼을까 궁금했죠. 이동은 감독님과는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했어요. 다음 영화에도 찬영이와 같이 출연하게 해달라고 부탁도 했어요.”

‘당신의 부탁’에서 종욱(왼쪽)과 효진은 서서히 서로를 받아들이며 가족이 돼 간다. 명필름ㆍCGV아트하우스 제공
‘당신의 부탁’에서 종욱(왼쪽)과 효진은 서서히 서로를 받아들이며 가족이 돼 간다. 명필름ㆍCGV아트하우스 제공

임수정은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2012)과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 같은 대중적 작품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엔 의외로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도 많다. ‘당신의 부탁’ 이전에도 ‘더 테이블’(2017)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2011)에 나왔다. 그가 노개런티로 출연한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2011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크고 작은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저예산ㆍ독립 영화를 다시 보게 됐어요.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주제의식이 돋보이더라고요. 이런 영화들을 대중이 많이 본다면 상업영화와 예술영화가 균형 있게 발전하면서 한국 영화가 더 풍성해질 거란 생각도 했고요. 저예산이어도 좋은 작품이면 계속 출연하고 싶어요. 다만, 돈은 좀 포기해야겠죠. 그건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창의적인 작업을 하면서 무척 행복했어요. 덕분에 세계 유명 영화제 레드카펫도 경험해 봤죠.”

‘내려놓음’과 ‘비움’의 자세는 삶에도 적용된다. 임수정은 3년째 채식을 하고 있다. 때때로 글을 쓰고, 기타를 연주한다. 혼자만의 공간으로 마련한 작업실에 찾아오는 길고양이에게 밥도 챙겨준다. 지난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반려견을 생각하며 유기동물 후원을 위한 플리마켓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인기와 부와 명예에서는 조금 멀어졌지만, 비워진 일상에 새로운 삶이 채어지고 있다.

1년째 팟캐스트 ‘필름클럽’도 진행하고 있다. 방송 아이템 취재를 위해 요즘엔 언론시사회에도 다닌다고 한다. 임수정은 “영화를 많이 보는 게 공부가 된다”며 “직접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기획해 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고 했다. 배우로서 차기작 계획을 물으니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다룬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대답과 함께 “빠른 시일 안에 1,000만 흥행도 꼭 경험하고 싶다”는 ‘예상 밖 소망’을 보탰다.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임수정이 그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생긋 웃었다. “그래야 제가 하고 싶은 독립영화도 더 많이, 더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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