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이 덜 익었다는 이유로 승무원을 폭행한 대기업 상무, 주차 때문에 호텔지배인의 뺨을 지갑으로 때린 빵집 회장, 식사 중 셔터를 내렸다고 경비원을 폭행한 피자업체 회장. 갑이 을에게 횡포를 부리다 혹독한 대가를 치른 사례다. 대기업에서 해고된 상무는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고, 중소규모의 빵집은 자진 폐업했으며, 피자업체 회장은 구속됐다 풀려난 뒤 경영에서 손을 뗐다. SNS를 통한 피해자들 폭로로 알려져 ‘을의 반란’으로 불린다.
▦ 갑의 고압적 태도에 당하기만 하던 을들이 달라졌다. 과거 같으면 그런 일을 당해도 회사 내부에서 쉬쉬하고 말았던 사건들이 이젠 사회적 이슈가 되고 되레 갑이 역풍을 맞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 한잔’이 한진그룹 총수 일가 전체를 뒤흔드는 태풍으로 번졌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카카오톡에 ‘갑질 불법비리 제보방’을 만들자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개설 닷새 만에 800명이 넘는 직원들이 폭언ㆍ폭행, 밀수, 관세포탈, 횡령 등의 제보를 올려 경찰과 관세청 등의 수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 제보에 참여하는 직원들은 번민이 크다고 한다. 혹시 입게 될지 모를 개인적 불이익은 그렇다 쳐도 “비리가 자꾸 드러나 회사 미래가 걱정된다”는 우려와 “회사 발전을 위해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대의가 교차한다. 이런 고민 속에서도 “검증된 전문경영인이 들어와 회사를 정상화할 때까지 잘못을 바로잡는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땅콩 회항’에서 촉발된 직원들의 분노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임계점에 도달한 듯하다.
▦ 을들의 폭로는 조직의 이익보다 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공익적 행위로 평가 받는 게 세계적 추세다. 5,000만 명이 이상의 개인정보가 불법 유출됐다는 의혹으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페이스북 사태 역시 내부 폭로가 단초가 됐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경영진 해임과 사명 교체 등에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발동해야 한다는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총수 일가 5명이 저지른 비위로 2만 명의 소중한 일터가 피해 받지 않도록 조씨 일가의 부당한 행위는 처벌해야 마땅하다. 을들의 폭로는 반란이 아니라 갑의 안하무인 행태가 빚어낸 필연적 결과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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