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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트럼프 이후의 아시아

입력
2018.04.22 13:2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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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정치가와 비즈니스 리더, 언론인과 학자들의 모임인 ‘삼각위원회(Trilateral Commission)’ 회의가 열렸는데, 많은 참석자들이 아시아에서의 미국 지도력의 쇠퇴를 우려했다. 우려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폭탄’과 글로벌 다자통상기구에 대한 무시로 더욱 커졌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아시아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이번 회의에서 주요 논제가 됐다.

과거에도 유사 상황이 있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아무런 예고조차 없이 동맹국에 관세를 부과했다. 아울러 금 불태환 선언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교란했고, 베트남에서 인기 없는 전쟁을 강행했다. 전문가들은 민주주의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 이후 미국 부호인 데이비드 록펠러와 국제문제 전문가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1년에 한 번 세계의 지도급 민간 인사들을 모아 글로벌 이슈를 논의하는 삼각위원회를 창설했다.

이번 회의에서 나온 미국의 리더십 약화 우려와 달리, 나는 미국이 상대를 압도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상대와 함께 힘을 행사하는 길을 깨닫는다면 트럼프 이후 아시아에서의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해 미국은 소프트파워로 국제적 이슈에 대해 중국과 인도, 일본과 유럽 또는 다른 나라들과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나 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통화 안정, 기후 변화, 테러리즘과 사이버 범죄처럼 단일 국가로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이 협력 대상일 것이다. 그러려면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강행한 국제사회에서의 일방적 정책이나 태도를 극복해야 한다.

중국의 대두와 관련해서는 현재의 비관론과 달리, 설령 트럼프가 재선되어 8년을 집권해도 미국은 여전히 핵심적 부문에서 힘의 우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본다. 그 중 첫째는 인구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2050년까지 인구가 증가할 나라다. 반면 중국은 현재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이지만 앞으론 인도에게 추월 당할 것이다.

둘째는 에너지다. 미국은 10년 전만 해도 아무런 대책 없이 수입 에너지에 의존해야 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셰일 혁명 덕택에 미국은 지금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했다. 향후 10년 간 북아메리카는 에너지 자급을 유지할 것이고, 중국은 점점 더 수입 에너지 의존도를 높여 갈 것이다.

기술은 미국의 세 번째 강점이다. 금세기에 국력을 좌우할 기술은 바이오테크나 나노테크와 함께 인공지능(AI)과 빅테이터 같은 차세대 정보기술(IT)이다. 많은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의 추격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관련 기술의 연구ㆍ개발, 상업화에서 글로벌 리더로 남을 것이다.

미국은 고등교육 시스템에서 네 번째 강점을 갖고 있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지아통대학이 매긴 세계 대학순위의 상위 20개교에 중국 대학은 단 하나도 없는 반면 미국은 16개 대학의 이름을 올렸다.

트럼프 이후까지 이어질 미국의 또 다른 우위는 달러의 역할이다.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액 중 중국 런민비(人民幣) 비중은 1.1%에 불과한 반면 미국 달러는 64%를 차지한다. IMF가 특별인출권 배스킷에 런민비를 포함시키기로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달러의 영향력 감소를 점쳤다. 하지만 그 이후 국제결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한 건 오히려 런민비였다. 특정국 통화가 보유외환으로서 신뢰성을 가지려면 통화시장이 뒷받침돼야 하고, 정부가 투명해야 하며, 법치가 확고해야 한다. 중국이 가까운 미래에 이런 조건을 충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섯 째, 미국은 중국이 갖지 못한 지리적 장점을 갖고 있다. 미국은 바다에 둘러 싸여 있고, 국경을 접한 캐나다와 멕시코는 여전히 우호적이다. 반면 중국은 14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인도 일본 베트남 등 주요국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제한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 필연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두 나라는 서로에게 현실적 위협이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즈음인 1900년 독일은 영국을 추월했고, 독일에 대한 영국의 두려움이 비극을 불렀다. 반면 미국과 중국은 상호갈등을 관리할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힐 일이 없다.

미국은 위에 열거한 우위 외에 일본, 대한민국과의 동맹이라는 자산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박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협상에서 미국의 동맹 약화를 겨냥한 북한의 오랜 시도를 차단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

나는 언젠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에게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노(No)”라고 말했다. “중국은 14억명을 가동할 역량이 있지만,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미국은 75억명 가운데서 뛰어난 역량을 결집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바로 그 개방성이 유지되는 한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걸친 미국의 리더십은 굳건히 유지될 것이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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