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 반려동물 1,000만 시대. 어느덧 ‘반려동물’들은 때론 다정한 친구, 때론 소중한 가족이 되어 우리 곁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토끼랑 산다’는 흔치 않은 반려동물 ‘토끼’를 들여다보는 연재입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토끼’에 대한 얘기를 6년 차 토끼 엄마가 전해드립니다.
친구에게 물었다. “토끼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올라?” 어떤 친구든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당근.” 나 역시 토끼를 키우기 전에는 친구들과 다르지 않았다. 토끼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고민해본 적이 없다. 애니메이션 속 토끼를 떠올리며 당연히 토끼는 당근만 먹고 살 것이라 생각했다.
토끼 ‘랄라’를 집으로 데려오던 날 마트 점원은 나에게 ‘알팔파’(Alfalfa) 건초를 건넸다. 점원은 “토끼는 이 풀을 먹고 산다. 이걸 먹이라”고 당부했다. 그런데도 나는 낯선 건초와 함께 마트에서 당근 2개가 들어있는 봉투를 무의식적으로 집어 들었다. 직원의 당부를 잊고, 토끼는 당연히 당근을 좋아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막상 집에 와서 당근과 알팔파를 건네자 랄라의 반응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입을 오물오물 거리던 랄라는 망설임 없는 ‘깡충’ 걸음으로 당근 대신 알팔파를 선택했다. 우리말로 ‘자주개자리’라 부르는 알팔파는 콩과의 다년생 식물로 목초와 사료로 쓰인다. 단백질이 많고, 비타민과 칼슘 함량이 높아 보통 생후 6개월까지 토끼의 먹이로 추천된다. 랄라가 당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초보 토끼 엄마들도 이런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다.
랄라와 5년 동안 함께 살아온 경험에 따르면 토끼에게 당근은 주식이 아니라 간식에 불과하다. 다른 토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특히 랄라는 당근을 좋아하지 않는다. 1년에 하루 맞춤 음식이 제공되는 랄라의 생일상에 당근은 낄 자격이 없다. 랄라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가 위풍당당하게 윗 자리를 차지하고, 그 아래 각종 풀이 자리한다.
토끼를 키우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지식과 준비가 필요하다. 그냥 데려와서 당근이나 툭 던져주면 된다는 생각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랄라를 키워보니 어쩌면 가장 필요 없는 것은 당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니메이션 속 토끼 캐릭터는 항상 당근을 들고 있지만 현실 속 살아 숨쉬는 토끼는 다르다. 토끼가 당근을 많이 먹으면 당분 때문에 장 질환이 생기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속 토끼가 만들어낸 잘못된 상식
도대체 언제부터 토끼가 당근을 주식으로 삼는 동물로 잘못 알려졌을까? 그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됐다. 1938년 ‘벅스 버니(Bugs Bunny)’라는 토끼 캐릭터가 등장하는 단편 애니메이션 ‘포키의 토끼 사냥’이 발표됐다. 벅스 버니는 한 손에 당근을 든 말썽꾸러기 토끼다. 이 토끼는 단숨에 사랑을 얻었고, 지금까지도 인기 있는 만화 캐릭터다.
벅스 버니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토끼가 당근을 주로 먹는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졌다. 애니메이션 업계에 따르면 벅스 버니 캐릭터 제작에는 토끼의 성향이 고려되지 않았다. 벅스 버니 캐릭터를 만든 애니메이터 척 존슨 등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벅스 버니가 당근을 들고 다니는 이유는 간단한데, 영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에서 남자 주인공이 당근을 먹는 장면이 인상적이라서 따왔다”고 설명했다. 애니메이터들이 당근을 먹는 남자 배우 모습을 토끼 캐릭터에 투영한 것이다. 당근은 토끼가 아니라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이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오랫동안 잘못 알려진 당근과 토끼의 관계를 바로 잡으려고 노력해왔다. 영국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는 2012년 “당근이 토끼에게 충치 등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매체 텔레그래프도 동물학자 레이첼 록스버그의 말을 인용해 “모든 애완용 토끼는 건초를 주식으로 먹고 싶어하는데 사람들은 토끼가 당근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단지 만화 속 얘기일 뿐, 토끼가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당근만 주지 말라”고 경고했다.
토끼에게 필요한 주식은 ‘건초’
그렇다면 토끼에게 당근 말고 무엇을 먹여야 할까? 처음에는 마트 직원이 건넨 알팔파를 먹였다. 그러다 극성 토끼 엄마가 돼버려 수입 알팔파 대신 국산 알팔파를 찾아 먹이기 시작했다.
토끼에게 ‘건초’는 인간에게 밥과 같다. 없으면 안 되는 소중한 끼니다. 그래서 랄라에게 경북 김천시 양지 바른 곳에서 자란 국산 알팔파를 먹이기 시작했다. 푸릇푸릇한 알팔파의 새순과 잘 말린 알팔파가 랄라에게 전달됐다. 랄라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랄라가 자라면서 또다시 어려움이 생겼다. 많은 수의사들은 토끼 생후 6개월까지만 알팔파를 먹이길 권한다. 알팔파의 경우 칼슘이 많아 오래 먹이면 칼슘 과잉으로 뼈나 치아에 질병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생후 6개월 이후에는 섬유질이 풍부하고 이갈이에도 좋은 티모시(Timothy) 건초로 바꿔줘야 한다. 이때 힘들어하는 토끼 반려인들이 많다. 토끼에게 알팔파가 부드러운 쌀밥이라면 티모시는 딱딱한 현미밥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알팔파와 티모시 비율을 2대8로 해서 먹였다. 이후에는 천천히 티모시 비율을 늘렸다. 랄라는 잘 적응했고 이젠 티모시 한 줌쯤은 한 자리에서 먹어 치우는 먹성 좋은 토끼로 자랐다. 간식으로는 일본에서 사온 토끼 전용 영양제와 딸기, 바나나 등을 가끔 준다. 어른 토끼가 된 지금도 랄라는 여전히 당근을 싫어할까? 식성은 변하지 않았다. 한 연예인이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것이 많은 데 한가지만 먹을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랄라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이렇게 달콤하고 맛있는 과일이 많은데 왜 당근을 먹냐고!”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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