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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이 원고인 소송, 소송비용부터 내라고?

입력
2018.04.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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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케이블카 취소 소송 당사자로 나선 산양. 한국산양보호협회 홈페이지 캡처
설악산 케이블카 취소 소송 당사자로 나선 산양. 한국산양보호협회 홈페이지 캡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구간에 사는 산양 28마리가 산양 연구가와 함께 지난 2월 케이블카 사업 허가를 취소해달라는 소송(본보 2월12일 17면)을 낸 것과 관련,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소송비용부터 내라고 한 사실이 알려졌다. 소송을 맡은 동물권 연구를 위한 변호사 단체인 피앤알(PNR)은 원고들만 다를 뿐 실질적으로 동일한 소송을 담당하는 재판부가 산양이 소송 당사자로 나서는 재판에만 담보제공을 명령한 것은 부당하다고 보고 즉시 항고한 상태다.

19일 PNR에 따르면 산양 소송을 맡고 있는 재판부는 첫 번째 변론 기일도 열리기 전 원고들에게 소송비용 담보로 930만원을 미리 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유는 사건 기록에 의하면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제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달았다.

PNR측은 이러한 명령은 ‘원고가 대한민국에 주소, 사무소와 영업소를 두지 아니한 때’ 또는 ‘소장, 준비서면, 그 밖의 소송기록에 의하여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한 때’ 등의 경우 내려진다고 설명했다. PNR 측은 “원고 30명 중 28명이 동물이니 소송비용이 담보가 안될 확률이 컸다고 하더라도 산양들과 함께 소송에 참여한 원고들이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결국 재판부는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법원의 태도는 소송을 해보지도 않고 이미 판결을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며, 산양을 제외한 다른 원고들의 재판청구권도 침해하는 것이어서 더욱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재판부는 원고들만 다를 뿐 실질적으로 동일한 소송(설악산케이블카저지 1소송)도 담당하고 있는데 위 소송에는 담보제공명령 없이 변론을 진행하고 있다. 박주연 변호사는 “통상 소송이 다 끝나고 판결을 내리면서 패소자한테 소송 비용을 부담시킨다”며 “산양소송에서 이례적으로 위와 같은 명령을 내린 것은 원고들 중 동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원고가 가압류를 걸거나 가처분 신청을 한 경우에도 담보제공을 명령하는데 이 역시 해당되지 않아 상당히 이례적이다.

지난해 7월 설악산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산양. 환경부 제공
지난해 7월 설악산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산양. 환경부 제공

앞서 PNR과 산양 소송에 뜻을 모은 변호사 10여명은 지난 2월 산양 28마리와 산양을 연구하는 전문가를 원고로 참여시켜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의 현상변경을 허가한 것이 부당하다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그동안 동물을 소송 당사자로 내세웠던 소송이 수 차례 각하된 적 있지만, 이번엔 동물을 대변할 수 있는 지위와 자격을 갖춘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후견인)이 ‘사람의 이익’이 아닌 온전히 ‘동물의 이익’을 위한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소송을 맡은 서국화ㆍ박주연 공동대표는 “환경행정소송에 있어 원고적격을 동물, 나아가 자연물 전체로 확대하는 논의는 학계, 실무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이번 소송이 국내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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