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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2029년 달러가 무너진다면… 지옥으로 변한 미국에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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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2029년 달러가 무너진다면… 지옥으로 변한 미국에서 살아남는 법

입력
2018.04.20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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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오넬 슈라이버. RHK 제공
라이오넬 슈라이버. RHK 제공

미래를 상상해서 쓴 소설이 이야기하는 건 ‘미래’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이다.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가 ‘어떡할지 모르겠다’가 아니라 ‘엄마 없는 세상이 무섭다’는 뜻인 것처럼. 미국 작가 라이오넬 슈라이버(61)의 ‘맨디블 가족: 2029~2047년의 기록’도 그런 이야기다.

2029년 미국이 망한다. ‘1등 나라’ 자리를 빼앗은 중국이 일으킨 금융 쿠데타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중국의 동맹들은 미국 힘의 원천인 달러를 몰아낸다. 가상화폐 ‘방코르’를 기축통화로 정하고 무혈 공격을 퍼붓는다(통일된 한국도 ‘배은망덕하게’ 가세한다). 미국의 반격은 끝내 먹히지 않는다. 인플레이션, 대량 해고, 사회보장제도 마비로 못 가진 자의 삶은 조금 더 팍팍해진다. 가진 자들이 가진 것들은 휴지조각이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강제로 평평해진 새로운 미국. 지긋지긋한 불평등이 사라진 대신, 운동장 자체가 지옥이 된다. 가진 자인 맨디블 가족 4대가 그 지옥을 통과하는 과정이 소설의 줄기다.

저자는 소시오패스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 ‘케빈에 대하여’를 비롯한 사회 소설을 써왔다. 그는 미국에서 2016년 출간된 새 소설에서 한껏 욕심을 냈다. 경제, 복지, 인종차별, 평등, 국가주의, 노령화, 가족 해체, 총기 규제, 기술 소외, 중국의 부상 같은 미국인과 인류의 온갖 고민들을 풍자했다. “모든 것은 연관돼 있어.” 주인공인 맨디블 4세 윌링의 대사이자 저자의 경고다. 재활용 방침이 조금 바뀌었다고 쓰레기 대란이 일어난 게 현실이니까.

소설의 설정은 이렇다. 미국 주류는 백인이 아닌 남미계다. 2028년 선출된 대통령도 멕시코 태생이고, 그는 대통령 취임 연설을 스페인어로 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엔 ‘미국인의 멕시코 행’을 막는 장벽이 놓였다. 일본은 중국에 먹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nt Again)’ 모토가 소설 속에선 실현되지 않은 것이다. “힘은 사라지게 마련이에요. (…) 자기가 놓든 말든. 그렇게 많은 돈을 갖고 있다가 잃은 일, 그렇게 많은 돈을 가졌는데 가진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한 일. 그건 멍청한 일이지.”

맨디블 가족: 2029년~2047년의 기록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박아람 옮김

RHK 발행∙592쪽∙1만6,500원

‘헬미국’의 젊은이들은 약을 먹고 몇 년이고 잠을 자는 ‘수면자’가 된다. 자는 동안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어서다. 잠은 비용을 낸 만큼만 잘 수 있다. 늙지 못해 안달인 사람이 많은 건 68세부터 연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가사도우미 ‘롭(Rob∙인간의 평온과 자율성을 약탈한다는 뜻)’과 생체 이식 결제 시스템은 오히려 일상을 헝클어뜨린다. 책과 신문은 종말을 맞지만, 성매매 산업은 건재하다. 성매매자는 ‘자극 컨설턴트’라 불린다.

이런 풍자들을 얼마나 신랄하다고 여기는지에 따라 소설의 재미가 갈릴 것이다. ‘본원통화 증대’ ‘수정 금본위제’ 같은 용어로 미국 경제가 붕괴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긴 앞부분은 독자가 넘어야 할 고비다. 미국에선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소설보단 경제 에세이 같아 어렵다”는 반응이 있었다. 소설엔 한국이 여러 번 나온다. “통일 후 쌍둥이가 재회하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빌어먹을 TV 드라마를 미국에 수출하고, 드라마에 미국인을 바보 단역으로 출연시키는 나라”로 묘사된다. 저자가 한류의 기세에 공포를 느끼는 걸까.

미국인답게, 저자는 디스토피아를 저지할 힘이 휴머니즘에 있다는 메시지로 소설을 맺는다. 가장 인간적인 등장인물인 윌링과 외고모할머니 에놀라는 테크놀로지의 식민지가 된 미국에서 탈출한다. 그들은 유토피아를 찾아낼까. 결말에 나와 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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