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철들지 않은 어른과 아이답지 않은 아이의 세상인가. 권위도 책임감도 없는 어른, 어른이나 다를 바 없는 아이, 아이 앞에서 인정 투쟁을 벌이는 어른이 곳곳에 출몰한다. 영화나 드라마, 동화책, 그림책을 보아도 그렇다.
따지고 보면 어린이란 시대의 시선에 포획된 존재다. 그저 나이가 어리고 덜 자랐을 뿐인 ‘작은 사람’이 근대에 이르러 ‘어린이’로 분류되어 아동기라는 격리된 시간, 학교라는 격리된 공간에 갇혔다. 근대는 어른과 어린이가 다르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어른을 보호와 교육의 주체로, 어린이를 객체로 나눴지만, 근대의 생산품인 어린이는 이제 유효기간이 다한 것 같다. 미디어 이론가이자 교육학자 닐 포스트먼은 “문자 문화에서 영상 문화로 미디어의 중심이 이행할 때 어린이는 소멸한다”고 주장한다. 영상 문화와 컴퓨터 기반의 미디어 환경이 오래된 관계와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대다.
어린이 개념이 어떻게 변화하든 눈앞의 어린이는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민준이가 학교에 간다. 가방 맨 어깨가 구부정하다. 시선은 땅에 꽂혀 있다. 예전 동네 살 때 괴롭히던 중학생들이 자꾸 생각난다. 민준이 잘못이 아니지만, 이사까지 왔지만, 상처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동작은 자연스럽고 표정은 생생하다. 감각적인 채색 스타일이 흥미를 돋운다.
새 동네, 새 학교에서 민준이는 달라지려 한다.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돈을 빼앗기지도 얻어맞지도 않게 강해질 생각이다. 동네 택견 수련관에도 나간다. 발차기 한 방으로 모두를 제압할 날을 기대하면서. 그런데 사부라는 사람은 맨날 줄넘기랑 공놀이만 시킨다. 게다가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하는 꼴이라니, 딱 동네 머슴이다. 아, 시시한 사부, 시시한 수련관.
이 책은 나무랄 데 없는 모범 답안 같다. 아이는 두려움 때문에 강해지려 하고, 무시당하지 않으려 다른 아이를 무시하며,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를 미워하고 상대를 원망한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만만하면 무시당하고, 괴롭힘 당하는 이를 도우려 나서는 이는 드물다. 그래서 힘을 갈망한다.
우리 동네 택견 사부
공진하 글∙이명애 그림
창비 발행∙38쪽∙1만2,000원
작가는 아이 앞에 미더운 어른을 내어놓는다. 택견 사부는 다른 이를 기꺼이 돕는 사람이며 힘이 있되 힘을 과시하지 않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아이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 어른이다. 아이는 보고, 감탄하고,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제 발로 움직인다. 그렇게 한 발짝씩 내딛다 보면 상처도 아물겠지.
어린이는 삶의 한 시절에 불리는 이름이다. 사전 동의도 없이 다짜고짜 이 세상에 던져진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삶의 단계다. 어른은 먼저 출발한 사람, 어린이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이다. 앞서가는 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뒷사람이 걷는다. 뒤통수가 따갑다.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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