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광고 대행사 직원에 대한 ‘폭언 및 물컵 투척’ 사건이 관심을 집중시키는 가운데 “진짜 갑질은 일감 몰아주기”라는 지적이 나왔다. 조 전무 사건은 엄밀히 말해 경미한 폭행이지만, 직원들이 일해 번 돈으로 총수 일가의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 더 심각한 갑질이라는 주장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인 김남근 변호사는 19일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에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3남매(현아, 원태, 현민)가 일감 몰아주기로 수백억원을 챙겼는데도 과징금을 내지 않고 있는 사례를 소개했다. 김 변호사는 관련 법 개정과 재벌 처벌에 과도하게 민감한 법원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김 변호사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조 회장의 3남매는 대한항공 계열사인 싸이버스카이의 주식 100%, 유니컨버스의 주식 85%를 소유하고 있다. 싸이버스카이는 기내면세품 쇼핑몰 사이트에 입점한 업체들로부터 받은 광고수입을 전부 챙겼다. 그런데 업체 유치에 필요한 일은 대한항공이 모두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니컨버스는 대한항공 콜센터 업무를 대행하면서 시설 비용을 한 푼도 내지 않고 대한항공에 떠넘겼다. 그것도 2~3배로 부풀려 받아냈다. 재벌 총수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가 계열사의 일을 맡으면서 해야 할 일과 비용은 떠넘긴 채 이익만 챙기는 이른바 ‘통행세 징수’ 행위를 한 셈이다.
김 변호사는 “이런 방식으로 3남매가 싸이버스카이에서 47억원을 배당 받는 등 70여억원의 이득을 취했고, 유니컨버스의 회사 일부를 207억원에 매각했다”고 설명했다. 싸이버스카이의 경우 3남매는 13억원을 투자한 뒤 5배 넘는 돈을 챙긴 것이다.
이런 ‘총수 일가의 기업 돈 빼가기 갑질’을 막기 위해 2015년 2월 공정거래법이 개정ㆍ시행됐다. 이 법 23조의2 ‘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 조항을 통해서다. 2016년 1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항공 법인과 조 회장의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과징금 14억3,000만원을 부과했다. 법원의 1심과 같은 공정위의 처분을 2017년 9월 서울고법이 취소 판결했다. 3남매가 얻은 이익이 대한항공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금액은 아니라는 취지였다. 이는 공정거래법 23조의2 개정 시행 후 첫 판결로 기록됐다.
이 판결은 논란이 됐다. 김 변호사는 “재벌 기업집단 내부에서 (총수 일가에게) 부당한 이익을 주는 행위 자체로 처벌해야 한다는 게 입법정신이었는데, 법원이 거래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이 조항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을 만들 때 (일감 몰아주기 등) 특수한 거래가 있으면 그 자체로 처벌하고, 법원도 재벌 총수 일가의 처벌에 대해 너무 엄격한 기준을 갖고 심사를 하는데 그런 판례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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