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 5년 전 문경은(47) 서울 SK 감독과 SK 가드 김선형(30)에게 적합한 표현이었다. 2011~12시즌 각각 감독대행과 신인으로 첫발을 뗀 둘은 두 번째 시즌(2012~13) 큰일을 냈다. 정규리그에서 역대 한 시즌 최다승 타이기록(44승10패)을 세우며 우승했다.
‘모래알’로 불리던 팀을 하나로 만든 문 감독의 ‘형님 리더십’과 폭발적인 스피드로 코트를 지배한 김선형의 합작품이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처음 서는 챔피언결정전에서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울산 모비스에 4전 전패로 무너졌다.
5년 후 4연패 준우승 굴욕은 ‘비싼 수업료’가 됐다. 문 감독이 이끄는 SK는 18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7~18 정관장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7전4승제) 6차전에서 원주 DB를 80-77로 꺾고 2000년 처음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뒤 18년 만에 두 번째 정상에 올랐다. 이번 시즌 정규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SK는 챔프전에서 1, 2차전을 먼저 내줘 5년 전 악몽을 되풀이하는 듯했지만 역대 최초로 2연패 후 4연승으로 시리즈를 뒤집는 기적을 연출했다. 18년 만의 우승을 지켜보기 위해 체육관을 찾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극적인 우승에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눈 뒤 헹가래를 받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문 감독과 김선형은 2013년 정규리그 우승 이후 바닥을 찍고 다시 정상에 올라 더욱 감격스러워했다. 문 감독은 2015~16시즌 9위로 추락했고, 2016~17시즌에도 7위로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또한 김선형은 2015년 중앙대 재학 시절 불법 스포츠 도박을 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2015~16시즌 2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불미스러운 일과 팀 성적 부진이 맞물려 스승과 제자는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5년 만에 다시 밟은 챔프전 무대에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들었다. 문 감독은 정규리그 내내 팀 전술의 핵심으로 뛰었던 애런 헤인즈가 무릎 부상으로 이탈하는 대형 악재를 마주했지만 ‘스몰 라인업’과 ‘3-2 드롭존’(코트 앞 선에 3명, 골 밑에 2명을 세워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지역방어)’ 등 다양한 전술로 경기를 노련하게 운영했다. 시즌 초반 발목 부상 탓에 3개월 넘게 공백기를 가진 탓에 챔프전 시리즈 초반 체력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김선형은 3차전부터 문 감독의 체력 안배로 승부처에서 힘을 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3차전에서 시리즈의 대반전을 알리는 역전 위닝샷을 넣었고, 4차전부터 6차전까지 경기 막판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문 감독이 “5년 전 나부터 초짜였고,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며 “지금은 우리 모두 확실한 목표의식이 생긴 만큼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자신했던 것을 제대로 입증했다.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는 외곽에서 맹위를 떨친 테리코 화이트(28)가 영예를 안았다. 화이트는 최종 6차전에서 팀 내 최다인 22점을 몰아치며 공격을 주도했다. 챔프전 6경기 평균 득점은 25점이다. 문 감독은 “모든 선수가 MVP”라면서도 “화이트가 팀의 구심점 역할을 잘해줬다”고 칭찬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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