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식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선배 PD가 같은 방향이니 같이 택시를 타자고 했습니다. 뒷자리에 앉았는데, 그 PD가 제 엉덩이와 허벅지를 만졌습니다. 부랴부랴 차에서 내리자 집까지 바래다준다고 절 붙잡더니 골목길에서 제 허리를 만지고 가슴을 움켜쥐는 등 성추행을 했습니다.”
#2.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한 50대 중후반 지상파 제작 PD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20대 후반 서브작가의 가슴을 움켜쥐었습니다. 서브작가는 그날 이후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PD를 말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후 별다른 조치도 징계도 없었습니다.”
방송 근로자 10명 중 9명은 성범죄 피해 경험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방송계갑질119와 방송스태프노조 준비위원회는 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8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는 2월 14일부터 3월 2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실시했으며, 총 223명(여성 209명·남성 14명)이 답변에 응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89.7%(200명)가 성추행, 성폭행 등 피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형별로는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가 70.4%(157명)로 가장 많았고, ‘음담패설 및 성적 농담(전화, 문자, SNS 포함)’이 57.8%(129명), ‘회식에서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하는 행위’가 49.3%(110명)이었다.
성범죄 피해 경험이 있는 응답자 194명 중 80.4%(156명)는 상황을 참고 넘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신분상의 열악한 위치’ 때문(57.7%, 90명)이다. 전체 응답자 중 88.3%(197명)는 방송사가 성폭력 사건을 인지해도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송스태프노조 준비위원회는 방송업계 성범죄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 핵심 원인을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이 높은 고용형태에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방송계갑질119의 김혜진 활동가는 “방송계는 근로자가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지면서 성폭력 피해도 만연하다”며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전담창구를 설치하고, 방송사 사규의 성폭력 관련 지침을 강화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방송스태프노조 준비위원회는 “성희롱 예방교육,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신고센터 설치 등 개선방안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정부 관계부처가 지닌 행정권한을 성폭력 문제와 연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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