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코리아스피드페스티벌
모닝 레이싱카로 이용 때
연간 유지비 250만원대 저렴
완성차업계 파격 할인 지원 등
모터스포츠 저변 확대 ‘기지개’
“고속주행 박진감 스트레스 싹~”
#. 지난 8일 오전 전남 영암군에 위치한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KIC) 상설 경기장. 경주를 앞두고 메디컬 테스트를 받는 아마추어 레이서 100여명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권투선수의 시합 직전 계체량처럼 경주 당일 혈압과 음주측정 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아예 출전 기회조차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KIC 관계자는 “아마추어 선수 대부분이 평범한 직장인들로 평일엔 일과 회식으로 강행군하다 주말 영암까지 차를 몰고 내려와 연습하는 이들”이라며 “고속주행과 급커브가 잦은 레이싱은 몸에 압박이 큰데 사전 메디컬 테스트에서 혈압이 높게 나온 선수들은 경기 중 사고위험이 높아 아예 출전을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 기아자동차는 KIC에서 열리는 국내 아마추어 모터스포츠 대회 ‘코리아스피드페스티벌(KSF)’에 올해부터 경차 ‘모닝’ 레이스를 데뷔시켰다. 기아차는 특별 프로모션을 통해 레이스용 모닝 구입 고객에 한 해 자동차 가격(1,000만원)의 30%(300만원)를 할인해주고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모닝 레이스를 위한 할인 프로모션 쿼터 40대가 예약 개시 2분 만에 마감됐다”며 “모닝은 엔진 배기량이 1,000㏄로 낮아 속도는 덜 나오지만 차체가 가벼워 서킷 코너링에선 오히려 웬만한 레이서카보다 역동적”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 원(F1)’을 유치하고도 좀처럼 저변을 넓히지 못했던 국내 모터스포츠가 아마추어 레이서들의 참여와 국내외 완성차 업체들의 지원 속에 차츰 기지개를 펴고 있다.
지난 8일 찾았던 영암 KIC에선 올해 KSF 개막전이 기존 코리아인터내셔널챔피언십(KIC컵)과 통합전으로 개최됐다. 두 대회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통합전 개최를 논의, 올해 처음 성사됐다. 관람객들이 두 대회를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게 하는 동시에 국내 모터스포츠를 기존 프로 레이스 중심에서 아마추어로 옮겨 모터스포츠 저변을 확대하자는 취지에서다.
이날 경주에 출전한 임동락(35ㆍ회사원)씨는 “일반도로는 사람이나 차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오히려 불안 요소가 많은데, 서킷은 통제된 공간에서 약속된 방향으로 주행하면 돼 훨씬 안전하다”며 “고속주행의 짜릿함과 스릴을 체험하면 누구나 빠져드는 게 모터스포츠”라고 즐거워했다.
실제 F1 대회를 위해 건립됐던 KIC는 한때 애물단지였다. 2010년 첫 대회를 시작으로 2013년까지 4년 간 열렸던 F1 코리아 그랑프리는 막대한 개최료 부담에 적자가 누적돼 결국 중단됐다. 2010년 국내에서 첫 F1 경기가 열렸을 당시만 해도 많은 관람객들이 KIC를 찾았지만 표 가격이 10만~70만원에 달할 만큼 비싼데다 서울에서 전남 영암까지 내려오기엔 너무 멀어 전국적인 붐으로까지 연결되진 않았다.
하지만 요즘엔 아마추어 레이서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르노, 메르세데스 벤츠, 페라리, 혼다 등 F1 레이싱 차는 연구, 개발비용 등까지 고려하면 대당 가격이 200억원을 훌쩍 넘는다. F1이 레이싱 경주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반면 모닝을 레이싱카로 이용할 경우 타이어 교체와 보수, 연료비 등 1년 유지비용이 25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차 값만 지불한다면 한 달 20만원 가량이면 누구나 1년 내내 모터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이날 열린 KSF 아반떼컵은 이미 아마추어 레이서 사이에 정착된 경주다. 아반떼 스포츠를 개조한 경주용 차가 멀리서 굉음과 함께 천천히 다가오는 듯 하다가 눈 앞에 다다르면 장마철 천둥소리를 내며 빠르게 빠져나갔다. 아반떼컵엔 총 63대가 출전했는데, 경기당 최대 36대까지만 트랙을 도는 게 가능해 두 번에 걸쳐 예선전이 이뤄졌다.
뒤쫓아 오는 차가 앞차 후미와 닿을 듯 바짝 붙어 주행할 때는 아슬아슬함에 관람객들 사이에서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 레이싱 용어로 ‘슬립 스트림(slip stream)’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고속 주행하는 차 후미가 공기흐름에 의해 진공상태가 돼 공기저항이 감소하는 특성을 이용해 뒤쫓아오는 차가 그 속에서 앞차를 추월할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관람객 박형우(33)씨는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 번에 날아가는 것 같다”며 “TV에서 중계하는 이종격투기 경기만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게 모터스포츠”라고 말했다.
모터스포츠는 진입장벽이 높은 취미라는 선입견이 강하다. “나이가 들면 할 수 없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 나선 아마추어 선수들은 그런 말에 고개를 저었다. 경기장에서 만난 아마추어 선수 채석원(47)씨는 35세에 처음 모터스포츠에 발을 들였다. “평소 차를 좋아하는데 운전도 잘 하고 싶어서”가 이유였다.
그는 45세가 되던 지난 2016년 열린 모터스포츠 대회인 ‘슈퍼 챌린지 타임트라이얼’에서 시즌 챔피언을 거머쥐었다. 채씨는 “취미로 골프를 치는 이들이 미국프로골프대회(PGA)에 출전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레이스도 즐기러 온다고 생각하면 50~60대 연령층도 가능한 게 모터스포츠”라며 “지난 10년 동안 사고 난 게 가드레일을 살짝 부딪혔던 것일 정도로 안전장구만 잘 갖추면 다치지도 않는 안전한 스포츠”라고 주장했다.
임두연(20ㆍ대학생)씨는 이날 경기에 출전한 최연소 여성 선수였다. 중학교 때 처음 아버지를 따라 간 경기장에서 소형 레이싱 차인 ‘카트’로 발을 들인 이후 지난해 3월 자동차면허를 취득, 올해 아반떼컵에 정식 도전했다. 임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주말 경기장에서 카트를 연습했다”며 “실력을 갈고 닦아 나중엔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모터스포츠의 비용 부담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기아차 모닝을 경주용 차로 쓸 경우, 연간 250만원 정도 유지비용이면 레이싱을 즐길 수 있다. 다만 배기량이 높아질수록 유지비용도 늘어난다. 아반떼 스포츠는 연간 500만원 정도, 벨로스터(2016년 벨로스터 터보 기준)는 1,000만원 정도로 두 배씩 뛴다.
KIC 관계자는 “모터스포츠 입문을 위해 서킷 라이선스를 따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면서 “모터스포츠가 국내 인기 스포츠의 한 축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암(전남)=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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