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평화시장 새댁식육점 대표를 칭찬합니다
“장롱 속에 묻힌 헌혈증 갖고 오세요!”
이태원(53)씨는 평화시장에서 ‘닭똥집’만큼이나 유명하다. ‘헌혈증 나눔 봉사’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한 덕분이다. 헌혈증을 가지고 오면 장수만큼 고기를 무료로 주고, 이렇게 헌혈증을 모아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한다.
이런 독특한 봉사를 시작한 것은 10년 전 우연히 TV를 보다가 ‘급히 혈액이 필요하다’는 보도를 접한 뒤부터였다. 그 전에도 그런 속보를 본 일이 있었지만 그날은 왠지 절실함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때부터 헌혈증을 모으기 시작했다.
“도축한 고기를 사서 뼈 바르는 작업을 하면 돼지는 인건비가 1만원, 소는 10만원입니다. 저는 이 작업을 직접 합니다. 해체비가 안 나가니 다른 집보다 원가에 여유가 생기죠. 원가를 고기로 환산해서 헌혈증과 바꾸는 것입니다. 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재능기부인 셈입니다.”
좋은 일이지만 사람들이 처음부터 좋게 봐 준 건 아니었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고, “손님 끌려고 별 짓 다한다”는 비아냥도 들려왔다. 강산이 한번 바뀌는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오해의 시선은 모두 사라졌다. 이제는 평화시장의 자랑거리가 됐다.
헌혈증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준다. 남은 헌혈증은 연말에 동구자원봉사센터에 기증한다. 1년에 대략 300~350장 정도 모인다. 헌혈증과 바꾼 고기가 350근 이상이라는 말이다.
잊지 못할 사연도 있다. 어느 날 거창에서 농사 짓던 농부가 경운기에 걸려 손가락이 부러졌다. 과다출혈로 위험한 상태였다. 소문을 듣고 도움을 청해왔다. 모은 헌혈증을 몽땅 기부했다. 다행히 무사히 수술을 마쳤고 지금은 완쾌했다. 이씨는 “1년에 2~3회 정도는 그런 일이 생긴다”면서 “헌혈증을 건넬 때마다 줄 게 있어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씨도 아파봤다. 중2때 골수염에 걸렸다. 제대로 된 치료를 꿈도 못 꿨다. 부모님은 소작농이었다. 어머니는 이씨를 가마니 위에서 출산했다. 3형제의 맏이였던 이씨는 공납금도 못 내 학교도 겨우 다녔다.
의사는 다리를 자르자고 했다. 차마 그러지 못하고 1년 동안 고름을 짜냈다. 다행히 차도가 있었고, 다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그때 결심했다.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아지면 힘든 사람을 돕자’고. 피가 부족하다는 뉴스 속보다 바쁘게 사느라 까맣게 잊고 있던 결심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수혈에 관한 한 의료인 못잖은 전문지식을 쌓았다.
“간이식환자는 헌혈증이 200장, 심장수술은 180장, 백혈병은 50여 장이 필요합니다. 어떤 수술을 한다 하면 헌혈증 몇 장을 줘야 할지 벌써 감이 옵니다.”
이씨의 봉사 열정은 가족에게도 전염됐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세신봉사단’을 10년 넘게 지속하고 있다. 학교가 쉬는 날, 어르신 생신잔치, 국수봉사, 연탄 나눔을 함께 했다. 동촌복지관에 등록되어 자녀들의 봉사마일리지가 보통 40~50시간이 되었다. 노숙자 무료식사, 장애인시설봉사 등 다양한 곳에 온기를 전한다.
상도 많이 받았다. 2017년 사회봉사부문 자랑스런 시민상, 2015년 동구구민상, 2011년 생명 나눔25인 선정 보건복지부 장관상, 초록우산 기부 등 수상 경력이 국가유공자급이다. 빨간 식육점 조명아래 봉사의 이력을 증명하는 상장들이 도배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봉사의 진짜 수혜자는 저입니다. 저로 인해 행복해하는 사람을 보면 제가 더 행복합니다. 덕분에 밝고 건강하고 피부도 좋습니다. 돈은 노력하면 먹고 살만큼은 벌어집니다. 그렇지만, 돈 있다고 마음까지 채워지는 건 아니죠. 나눔과 봉사는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강은주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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