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성 출장' 의혹에 휩싸였던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임명 19일 만인 16일 물러났다. 그가 19대 의원 임기 막판 5,000만원의 정치후원금을 민주당 전현직 의원 모임에 기부한 것이 위법이라고 중앙선관위가 결정했기 때문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문제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면 사임케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선관위가 애초 논란이 됐던 '피감기관이 돈을 댄 해외출장'의 위법성에 대해 판단을 유보한 것은 불만족스럽다. 청탁과 로비의 유혹이 난무하는 입법부의 재량을 과도하게 인정해 면죄부를 준 듯해서다.
선관위도 피감기관 동원 출장이 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 수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출장 목적과 내용, 출장의 필요성이나 업무 관련성, 피감기관의 비용부담 경위와 지원범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 상규상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며 결정을 보류했다. 일률적으로 규제하기보다 전후 맥락을 따져 위법성을 가려야한다는 뜻일 게다.
문제는 이런 여백이 늘 불법을 감싸는 근거로 악용된다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는 "민주당의 도움을 얻어 수천 개의 피감기관 중 16곳만 뽑아 실태를 조사한 결과 19, 20대 국회에서 '외유성 출장'이 무려 167차례(더불어민주당 65회, 자유한국당 94회)나 됐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이 발표가 '국회 사찰'이라고 발끈했지만, 국회에서 '관행'이라는 미명아래 얼마나 많은 몰염치한 갑질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다. 김 전 원장의 낙마를 계기로 국익 혹은 공무 차원의 의원 해외출장 범위를 명확히 하고 비용은 국회예산으로 지원하는 규율과 감시체계를 속히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우리는 국회가 스스로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 사례를 전수조사하고 '고해성사'를 할 것을 제안한다. 긴 작업이 수고롭다면 대상을 19대와 20대 국회로 한정해도 괜찮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최근 외유성 출장 실태가 어땠길래 관행 운운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국회 차원의 제도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민주당 등이 가세한 이런 요구를 ‘의혹 물타기'라고 하지만, '내로남불' 논란이 반복되는 후진적 정치문화를 쇄신하기 위해서라도 이 조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당은 김 전 원장 비호에 앞장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몰아붙여 문재인 정부의 뿌리를 흔들고 싶을 것이다. 그러려면 'X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것이 아님을 먼저 보여 줘야 한다 그것이 김기식 논란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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