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달라졌죠? 그 동안 곳곳에서 터졌던 사고들을 자세히 보세요. 대부분 막을 수 있었어요. 언제나 그 때 뿐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바뀐 건 없어요.”
손사래부터 쳤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안전불감증 근절을 외치고 다녔지만 변한 건 없다고 했다. 재난 사고에 대한 국민 인식이나 정부 컨트롤타워와 관련된 그의 평가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실제 구조 작업에 참여했던 정동남(68) 한국구조연합회 회장의 지적은 냉정했다.
“새 정부는 ‘안보’에만 신경쓰면서 ‘안전’은 뒷전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제대로 된 재난 위기 관리 대응 시스템이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지난 12일 서울 한강대교 인근 공원에서 만난 정 회장에게 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을 묻자, 돌아온 답변은 거칠었다. 4,700여명의 전국 회원들을 둔 한국구조연합회 수장인 그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여전히 긴급 출동 상황에 대비해 자전거 타기 등 체력 단련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직접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유가족들의 심정은 제가 누구 보다 잘 압니다. 저도 동생을 물에서 잃었으니까요.” 말끝을 흐린 그에게서 엷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49년 전 동생을 잃고 구조대원 길로
사실, 정 회장처럼 40년 넘게 위험한 곳에서 자발적인 구조 활동을 지속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자비로 움직였어요. 밤무대를 뛰면서 벌었던 대부분의 수입도 필요한 재난 구조 장비 구입이나 동료들의 훈련비용 등으로 모두 썼어요. 친동생 익사 사고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다음부터 그랬습니다.” ‘점박이’ 탤런트 겸 영화배우로도 잘 알려진 정 회장은 재난 구조 대원의 길로 들어선 계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1969년 한강에서 동생을 잃었습니다. 동생이 물에 빠졌는데, 찾을 길이 없었어요. 그 때 한강엔 조각배를 타고 다니면서 물에 빠진 실종자들을 건져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돈을 요구했어요. 어렵게 돈을 마련해서 갖다 줬지만, 돌아온 건 싸늘한 동생 시신이었습니다.” 어려웠던 형편 탓에 나무 사과상자로 만든 관에 동생을 떠나 보내야만 했던 정 회장의 재난 구조활동은 가슴아픈 가족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75년 특수인명구조단을 조직한 정 회장은 재난 현장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는 굵직굵직한 국내외 재난 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는 4년 전 세월호 침몰 사고 해역을 포함해 서해 페리호 침몰(1993년),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대구 지하철 화재(2003년) 등의 현장을 지켰다. 정 회장의 활동 영역은 해외까지 이어졌다. 괌 대한항공 항공기 추락 사고(1997년)와 태국 쓰나미 사태(2004년), 중국 쓰촨성(四川省) 대지진(2008년) 등의 참사 현장에도 달려갔다. 그는 이런 국내외 재난 구조 활동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 2회(1995, 2000년)와 국민훈장 동백장(1998년) 등을 수상했다.
민간이 배제된 재난 안전 시스템의 실효성은 의문
화려한 이력을 얻었지만, 정 회장에겐 내상도 적지 않았다. “주변에서 ‘미쳤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어요. 속된 말로 나올 것도 별로 없는데, 매번 자기 돈을 써가면서 목숨 걸고 다른 사람들을 구해봐야 뭐하냐는 거였죠. 재난 사고 현장에선 괜히 설치고 돌아다닌다고 공무원들한테 눈치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적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는 재난 구조 현장에서 보낸 40년 이상 세월의 씁쓸했던 기억을 이렇게 털어놨다. 가족들에겐 더 미안했다. “1년에 6개월은 집 밖에서 보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산이나 바다에서 상황에 맞는 구조 훈련을 해야 하거든요. 제 생활 패턴이 가족들에게 소홀할 수 밖에 없어요. 그나마 요즘엔 더 어려워졌습니다. 지원도 아예 끊겼고….” 정 회장은 그 동안 10억원 가까이 자비로 구입했던 재난 구조 장비들을 처분하면서 연합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사무실 운영비마저 걱정해야 할 처지다.
하지만 늘어나는 재난 사고를 그냥 두고 볼 수 만 없는 것도 그의 운명인 듯 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해양 사고의 인명피해(사망ㆍ실종)는 지난 2015년 100명에서 2017년 145명으로 증가했다.
“TV에서 ‘병원으로 후송 도중 숨졌다’는 재난 사고 뉴스를 볼 때마다 속이 터져요. 골든타임에 응급조치로 살릴 수 있는 아까운 목숨들이 많다는 얘기로 들리거든요. 다른 선진국들처럼 우리도 민간과 경찰, 소방, 의료진, 공무원 등이 결합한 유기적인 재난 안전 시스템을 반드시 구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일까. 정 회장은 더더욱 재난 구조 활동을 멈출 순 없다고 했다. “이젠 나이도 있는데,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아요. 힘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세월호 참사 때처럼 말입니다.” 봄철 산악 훈련 일정을 준비해야 한다며 사무실로 향한 그의 뒷모습에선 강한 책임감이 묻어났다. 글ㆍ사진=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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