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연출
독립영화 대가 숀 베이커 감독
올랜도 디즈니월드 모텔촌 배경
아이들 눈으로 하층민 삶 묘사
사실감 위해 비전문 배우 섭외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제목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디즈니의 테마파크 부지 매입 사업 명칭, 다른 하나는 홈리스 지원정책. 이 기묘한 아이러니가 드러내는 진실은 무지개 건너편에 존재하는 차디찬 현실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들어선 디즈니월드 주변엔 동화 속 마법의 성을 본 뜬 파스텔 빛 모텔들이 즐비하다. 관광객이 더는 찾지 않는 그곳에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집 잃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여섯 살 악동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와 철 없는 엄마 핼리(브리아 비나이트)는 ‘매직 캐슬’에 산다. 영화는 아이들의 눈을 빌려 미국 하층민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한국에서 지난달 7일 개봉해 한 달여간 9만 관객을 동원했다. 반복 관람 열풍도 불었다. 미국 독립영화로는 이례적 흥행에 숀 베이커(47) 감독이 뒤늦게 한국을 찾았다. 13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베이커 감독은 “미국의 영화와 TV프로그램은 특정계층만을 다룬다”며 “그렇기에 아무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커 감독은 3년간 디즈니월드 모텔촌을 취재해 이야기를 썼다. 무뚝뚝하지만 사려 깊은 모텔 매니저 바비(윌럼 더포) 캐릭터도 실제 인물을 토대로 탄생했다. 더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전문 배우들을 섭외했다. 무니는 오디션으로, 무니의 단짝 젠시(발레리아 코토)는 길거리 캐스팅으로 발탁했다. 장난꾸러기 스쿠디(크리스토퍼 리베라)는 실제 모텔촌에 사는 소년이었다. 브리아 비나이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찾아냈다. “유명 배우가 연기하면 사실감이 떨어져 몰입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어요. 기성 배우와 비전문 배우가 함께 빚어내는 느낌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인물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화면 구성도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이다. 베이커 감독은 “영화가 한층 사실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관객이 상황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런 화면 구성을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세상이 실재한다는 사실은 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다. 베이커 감독은 한참 동안 숨을 고른 뒤 이야기를 이어갔다. “솔직히 말하면 빈곤의 악순환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어요.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삶이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않다는 사실을 영화에 반드시 담으려 합니다. 제가 만든 영화가 그들의 삶이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희망을 완전히 저버릴 수는 없다. 영화 개봉 이후 리베라는 지역 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됐다. 어릴 적 모텔촌에 살았다는 한 관객은 과거 자신의 삶이 영화와 똑같았지만 지금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SNS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베이커 감독은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이제 막 한국에 알려졌지만, 미국에선 독립영화계를 이끌 젊은 대가로 불린다. ‘탠저린’ ‘스타렛’ 등 그의 영화들은 홈리스, 싱글맘, 트랜스젠더, 성매매 여성 등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 눈길을 두고 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인류애를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오아시스’와 ‘시’ ‘밀양’은 인간의 고립감과 소외를 다룹니다.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적인 삶이죠. 저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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