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 지원 금지’ 조항 있지만
적발ㆍ제재 실적은 거의 없어
“20개 그룹서 의심 사례” 보고
최근 SPC그룹 조사가 신호탄
중견기업 ‘쌍끌이 압박’ 비상
공정거래위원회가 그 동안 자산 5조원 이상의 재벌 대기업집단에 초점이 맞춰졌던 일감 몰아주기 조사를 중견기업까지 확대한다. 총수 일가 소유의 회사와 내부 거래 비중 등이 높은 자산 5조원 미만 중견기업들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마침 국세청도 중견기업 과세를 강화하고 나섰다. 쌍끌이 압박을 받게 된 중견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공정위 관계자는 16일 “자산 5조원 미만 중견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들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ㆍ제재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자산 5조원 미만의 중견기업들은 사실상 일감 몰아주기 조사에서 배제됐다. 2015년 2월 시행된 ‘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공정거래법 제23조의2) 규정은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에 소속된 회사가 총수일가가 3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와 ▦상당히 유리한 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의 행위를 하면 관련 법인 및 개인(총수일가) 등을 처벌토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산 5조원 미만 기업도 모든 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부당지원 금지’(제23조1항7호) 조항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제재할 순 있지만 실적은 거의 없다. 2014년 1월 삼양식품이 1993~2012년 이마트에 라면을 납품하는 과정에 지배주주가 보유한 내츄럴삼양 등을 끼워 넣어 통행세를 챙겨준 행위를 적발한 게 고작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 기업집단국이 최근 SPC그룹(파리바게뜨 등)에 조사관 30여명을 보내 계열사간 내부거래 자료 등을 확보한 것은 중견기업 일감 몰아주기 조사의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이에 앞서 김 위원장이 과거 소장을 맡았던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해 2월 보고서를 통해 “농심 풍산 SPC 오뚜기 등 20개 중견그룹에서 일감 몰아주기 의심 사례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당시 “대기업집단에 한정해 적용하는 공정거래법 23조의2(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 규정을 비(非) 기업집단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실제로 시장에선 사조그룹이 창업 3세인 주지홍 사조해표 상무가 최대주주인 사조시스템즈에 일감을 몰아준 뒤 이 회사가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사조산업 지분을 직접 매입하는 방식으로 ‘3세→사조시스템즈→사조산업→계열사’의 경영권 승계구조를 완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세청도 지배주주 지분이 3% 이상(중소ㆍ중견 10%)인 기업의 계열사간 내부거래 비중이 연 매출의 30% 이상(중소ㆍ중견 50%)인 경우, 이 같은 거래에서 발생한 이익의 일부를 ‘증여’로 간주해 수혜기업 지배주주에게 세금을 물리고 있다. 특히 올해부턴 중견기업의 정상거래비율 공제 등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중견기업에 대한 과세를 더 강화했다. 이동신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120여명으로 구성된 ‘대기업ㆍ대자산가 변칙 상속ㆍ증여 검증 태스크포스(TF)’에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세금 없는 부(富)의 대물림’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며 “TF 운영기한도 당초 2월 말에서 상반기 내로 연장했다”고 말했다.
다만 공정위의 이 같은 방침이 가시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견기업 일감 몰아주기를 제재할 때 적용되는 부당지원 금지 조항의 경우 이러한 행위가 실제로 시장의 경쟁을 제한했는지를 공정위가 입증해야 위법성이 인정된다. 이황 고려대 교수는 “법원에서 부당지원에 대한 공정위의 입증 책임을 매무 엄격하게 요구하고 있어 실제 위법성을 인정받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집단소송이나 다중대표소송제 등을 통해 주주 등 이해관계자가 일감 몰아주기를 자체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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