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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 비정규직 연구원이 정교수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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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 비정규직 연구원이 정교수 됐어요”

입력
2018.04.17 04:4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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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박은정 교수

출산ㆍ가족 병간호 탓 경력 단절

40대에 뒤늦게 박사학위 받아

비정규직에 연구비 지원하는

한국연구재단 도움으로 연구 성과

세계 상위 1% 연구자 2년째 선정

박은정 교수는 “제가 처한 상황을 원망만 했다면 지금처럼 연구를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충분히 제 도리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편과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면서 “여성 과학자가 남성에 비해 감내해야 할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단점 보다 잘 하는 걸 살리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영상팀
박은정 교수는 “제가 처한 상황을 원망만 했다면 지금처럼 연구를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충분히 제 도리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편과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면서 “여성 과학자가 남성에 비해 감내해야 할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단점 보다 잘 하는 걸 살리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영상팀

“아직 못 했고요, 그 소파가 실은 잠자는 자리거든요. 전에는 공동연구실 썼으니까 잠깐 눈 붙일 상황 되면 의자 2개 붙여서 자곤 했는데 지금은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죠.”

진행 중인 연구를 신명나서 설명하다 ‘학교 근처로 이사는 하셨냐’는 질문에 쑥스럽게 대답한다. 박은정(51)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융합건강과학과 교수 얘기다. 연구에 한번 집중하면 꼬박 3박 4일 실험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그는 항상 대학 근처에 집을 구했다. 그런 집념으로 글로벌 정보분석 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뽑은 ‘연구 성과 상위 1% 연구자(HCR)’에 2년 연속(2016, 2017년) 선정됐다. 지난해 HCR에 선정된 한국인 과학자는 총 32명. 그 중에서 박 교수가 유명세를 탄 건 결혼, 임신, 가족 병간호로 40대에 공대 박사학위를 받은, 비정규직 연구원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지난해 12월 경희대 정교수로 부임했다.

최근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만난 박 교수는 “정서영 부총장께서 ‘연구하는데 어렵지 않게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딱 한마디 하셨고, 발령장 보고 정교수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대신 숙제를 주셨죠. 논문 쓰기 위한 연구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연구를 해 달라고. 제가 가습기 살균제 영향 연구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런 연구가 실험 기간이 오래 걸려요.”

스스로를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고 말한 박 교수는 동덕여대 건강관리학과를 나와 한국전력에 입사했다. 의대에 가고 싶었지만 집안이 어려워 장학금을 받기 위해 성적보다 낮춰 대학에 지원했다. 맞선을 본 남편과 몇 달 만에 결혼했고 임신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었다. 모교 약대에 입학한 건 아이가 세 살이 지나서였다. 석사 졸업하던 1995년 친정어머니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한 달 뒤 시아버지마저 식도암 말기 판정을 받으며 다시 공부를 그만두었다. 석사 졸업 후 8년이 지나고 박사 과정에 다시 도전할 무렵, 시아버지의 암이 재발했다. 결국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박 교수가 박사를 공부하기로 했다. 그의 전공은 화학물질의 중독 작용과 메커니즘, 해독처리법 등을 연구하는 독성학. 미세먼지부터 가습기 살균제, 담배 독성 연구 등 국민적 관심사가 큰 분야다. ‘전공 선택할 때 시장성을 고려했냐?’는 질문에 그는 “제 가족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방법의 하나였다”고 답했다.

지난 12월 경희대에 부임한 박은정 교수. 한국일보 영상팀
지난 12월 경희대에 부임한 박은정 교수. 한국일보 영상팀

여기서 에피소드 하나. 박 교수의 친정어머니가 췌장암 판정을 받기 전, 그녀의 아들이 먼저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다 받으며 오전 8시에 뽑은 아들 혈액이 하루 종일 방치된 걸 보게 됐고 재검사를 요구해 오진을 밝혀냈다. 박 교수는 “내가 똑똑하지 않으면 내 새끼를 절대 못 지키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부할 기회를 악착같이 붙잡게 된 이유다.

두 번째 에피소드도 역시 ‘아들’과 관련 있다. 그렇게 키운 아들은 ‘저 조그마한 간이 어떻게 견딜까’ 싶을 정도로 약을 달고 살았다. 한데 잠깐 대전에서 사는 동안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 박 교수 자신보다 몸집이 작았던 친정어머니는 항암 치료를 시작하며 앉을 수도 없을 정도로 퉁퉁 부었고, 자동차 운전이 주업이었던 시아버지는 식도암에 이어 치매를 앓았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질병을 피하거나 제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독성학을 전공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미혼이었다면 (연구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는데 한계가 있었을 거 같다”고 말했다.

마흔 넘어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불러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고, 박 교수는 모교에 연구원 신분으로 남아 계속 공부를 했다. 기회는 2011년 찾아왔다. 박사 취득 7년 이하 비정규직 연구자에게 일자리와 연구비를 지원하는 한국연구재단의 ‘대통령 포스닥(박사후연구원) 펠로우십’에 선정돼 연간 1억5,000만원씩 5년 간 지원받았고, 그렇게 쓴 논문이 400~500회 피인용되면서 세계 독성학 연구자들 사이에 이름을 알렸다. 2015년 미래창조과학부의 ‘지식창조대상 장관상’을, 2016, 17년에 HCR에 올랐다. “실험실에서 연구 데이터 해석할 때면 아무 생각이 안 들었어요. 스스로 ‘미친 사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집에서 빨래하다가도 ‘어제 현미경으로 본 쥐 세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런 생각할 때도 있으니까요. 연구하다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는데 포기를 못하겠더라고요.”

박 교수가 바라는 건 장기 연구가 가능한 공공 지원이다. “HCR에 이름 올릴 수 있었던 건 5년간 안정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였거든요. 발암성 실험도 생식독성 실험도 6개월에서 1년씩 걸리는 연구과제에요. 장기 과제를 하면서 과학자가 성장하고 새 연구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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