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별세한 배우 최은희씨는 북한 납치사건으로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2007년 출간한 최씨의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 등에 따르면 최씨는 전 남편 신상옥 감독과 함께 세운 안양영화예술학교(안양예고)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자 투자 유치를 위해 1978년 홍콩을 찾았다가 납북됐다. 홍콩에서 배를 타고 8일만에 북한 남포항에 도착했을 때 당시 북한 2인자인 김정일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최씨를 보자마자 김정일은 “내레 김정일입네다”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며칠 후 저녁 식사에 초대해 “(내가) 난쟁이 똥자루 같지 않습네까?”라는 농담을 건넸다. 이후 신 감독도 납북이 됐고, 옛 부부는 생각지도 못했던 장소에서 해후를 하게 돼 다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최씨와 신 감독 납북은 김정일의 직접 지휘로 이뤄졌다.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은 북한 영화의 획기적 발전을 위해선 남한 우수 영화인재를 수혈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두 사람 납북까지 결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남한에선 두 사람이 6년 가까이 행방불명으로 인식되고 있다가 1984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두 사람이 금강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을 공개한 후 납북을 공식화했다.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최씨와 신 감독은 북한 영화 역사를 바꿔놓는다. 신 감독의 제작 지휘아래 최씨가 메가폰을 든 영화 ‘돌아오지 않은 밀사’는 북한 영화 사상 최초로 해외 로케(체코)를 했고, 해외 영화제에 북한 영화로선 최초로 초청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영화는 북한 영화로선 처음 배우와 제작진의 이름을 넣기도 했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 이외엔 국민에게 인기를 끌거나 유명해져서는 안 된다는 인식 때문에 북한 정부는 크레디트를 금지시켰었다. 최씨는 신 감독이 연출한 북한 영화 ‘소금’의 주연배우로 출연해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았다.
최씨는 8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한공작원들을 따돌리고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하며 세계를 한차례 또 놀라게 한다. 김정일에 최대한 협조를 하다가 신뢰가 생기자 서방으로 탈출을 시도해 성공한 것이다. 김정일 입장에선 배신자였던 셈이다. 당시 최씨와 신 감독은 신변 안전을 이유로 미국에 한동안 정착했다.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인연을 맺어야 했던 김정일이 2011년 숨지자 최씨는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에게 잘해주신 사람이기도 해 납북한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아쉬움도 있다”며 “우리는 (김정일의 지원에) 부응해 열심히 일을 해주고 와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진 않는다”고 밝혔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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