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급성능과 관리부실로 천덕꾸러기로 전락
제 기능 못 하고 잦은 고장으로 대구 전역 방치
11일 오후2시쯤 대구 중구 달성공원 정문으로 올라가는 오르막 모퉁이. 이곳에는 높이 3m의 태양광집광판과 지지대, 데스크톱 크기의 본체, 1.5m길이의 공기주입기를 갖춘 ‘태양광자전거공기주입기’가 설치돼 있었다. 40대 남성이 자전거를 끌고가다 이를 보고 본체의 빨간 버튼을 눌렀다. 설명서에는 콤프레샤가 작동되면서 공기가 주입된다고 했으나 아예 작동되지 않았다. 대구 북구 북부도서관 입구와 침산중 정문 근처 자전거보관대, 수성구 대구은행 본점 도시철도역 입구 자전거보관대에 설치된 태양광자전거공기주입기도 마찬가지로 먹통이었다. 대구은행 인근 주민은 “몇 달째작동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구지역 친환경 정책의 하나로 설치된 태양광자전거공기주입기 상당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채 방치돼 있어 전시행정과 예산낭비의 표본으로 지목받고 있다.
태양광판을 통해 얻은 전기로 본체의 콤프레샤를 작동시켜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을 넣는 태양광자전거공기주입기는 지난해말 기준으로 중구 12기, 동구 11기, 서구 48기, 남구 15기, 북구 7기, 수성구 20기, 달서구 30기, 달성군 9기로 모두 206기가 설치돼 있다. 공기탱크가 있는 대용량 주입기 설치비는 기당 400만원, 일반 200만원, 수동식 주입기 50만원이다.
기자가 이달 초부터 무작위로 3개 기초단체 자전거공기주입기 16기를 확인한 결과 44%인 7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명덕역에 설치된 수동식 주입기도 먼지만 잔뜩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었다. 펌프질을 해도 작동되지 않았다.
시민 윤창석(42)씨는 “태양광자전거공기주입기가 고장 난 채 방치되는 것을 보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하다”며 “설치 당시에는 친환경 명품이라고 자랑했을 시설들이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부분 지자체가 태양광자전거공기주입기의 오작동 여부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서 부실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한 공무원은 “신고가 들어오면 즉시 제조사에 전화해서 수리토록 한다”며 “인력이 부족해 일일이 다 확인할 수도 없다”고 해명했다.
반면 서구청은 공공근로자가 자전거주차장 청소할 때 공기주입기 작동여부를 담당자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설치장소도 문제다. 오후 2시쯤 명덕역에 설치된 충전기는 도시철도역으로 통하는 계단에 가려 태양광 집광판에 햇볕이 거의 들지 않았다. 중구 2ᆞ28 기념공원에 설치된 공기주입기는 가로수 나뭇가지가 집광판을 모두 가리고 있었다. 달성군에는 사람과 자전거 왕래가 거의 없는 팔조령 정상에 공기주입기를 설치하기도 했다.
한 자전거 동호회원은 “팔조령 정상까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휴대용주입기도 없이 다니겠냐”며 “인적이 드문 곳이나 산꼭대기까지 설치한 것은 탁상행정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자전거 대리점을 운영하는 J씨는 “휴대용공기주입기나 고정식도 만원이면 구매하는데 대구에 고가의 태양광공기주입기를 수백 기나 설치하고 방치하는 것은 예산낭비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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