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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4개월에 대화 실종… 힘들면 떠나라는 남편

입력
2018.04.16 04:4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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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0년 만나고 결혼했지만

남편과 진지하게 소통한 적 없어

답답한 마음 어렵게 털어놨지만

“힘들면 떠나” 답변에 또 상처

나만 대화 원하나 싶어서 괴로워

결혼한 지 4개월 된 신혼부부입니다. 저는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아무 연고도 없는 타지로 오게 됐어요. 현재 구직이 쉽지 않아 하루하루 살림하며 퇴근하는 남편만 기다리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남편과 대화가 전혀 없다는 거예요.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휴대폰만 바라봅니다. 밥을 먹은 후에는 방에 들어가 컴퓨터 게임에 몰입해요. 물론 이해합니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렸으니 퇴근하고서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겠죠. 그런데 최소한 식사하는 중에는 서로에게 집중하며 대화를 할 수는 없는 걸까요? 제가 질문을 해야 그나마 대답이 돌아오고 제가 말하지 않으면 대화가 일절 없어요. 같이 여행을 가고, 식당이나 카페를 가도 똑같아요. 저를 앞에 두고 남편은 휴대폰만 들여다 봅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어요. 이 사람은 나와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없는지, 궁금한 건 없는지, 저만 이런 생각을 한다는 생각에 더 화가 납니다. 생각해보니 결혼도 진지한 고민 없이 하게 된 것 같아요. 남편과는 제가 20살 때 만났어요. 중간에 몇 번 헤어졌던 적이 있지만 함께 해 온 시간이 쌓이면서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 이 사람이라면 꾸미지 않은 내 모습으로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자연스럽게 결혼한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 두 사람의 미래, 자녀계획, 바라는 배우자상, 꿈꾸는 가정과 같은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네요.

처음에 저보다 5살이 많은 남편이 굉장히 어른으로 느껴졌어요. 제게도 앙탈부릴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에 그가 더 좋았습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저는 철이 조금 일찍 든 편이에요. 3살 아래 동생을 챙겼습니다. 그런 저를 칭찬하는 부모님을 보며 어릴 때부터 혼자서 잘 해내려고 노력해 왔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암 투병 중 엄마가 아빠의 오랜 외도를 알게 됐어요. 엄마는 제게만 그 사실을 털어놓았어요. 아마 그때도 저는 의지할 수 있고 동생은 어린애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는 안쓰럽던 아빠를 미워하게 됐고, 얼마 후 아빠가 돌아가시자 죄책감에 빠졌습니다. 그럴 때 남편은 제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부모님의 사이가 틀어지긴 했지만 어릴 적 부모님이 집에서 술 한 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장면이 기억 속에 남아 있어요. 그 모습이 제 눈에 좋아 보였던 것 같아요. 남편은 부모님이 일찍 이혼했다고 들었습니다. 이혼가정에 대한 편견이 있는 건 아니지만, 혹시 남편은 가정환경의 영향으로 이상적인 부부 관계를 그려본 적이 없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결혼하고 보니 우리가 다른 사람이라는 게 더욱 두드러졌어요. 저는 사색하는 걸 좋아합니다. 책 읽고, 영화보고, 여행을 하며 느낀 것들을 정리하고 이런 소재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남편은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게임을 좋아합니다. 서로 좋아하는 게 같다면 가장 좋겠죠. 하지만 저는 게임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제게 게임을 강요하면 너무 싫겠다는 생각에 저도 남편에게 요구하지 않아요. 다만 제가 원하는 건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소한 대화예요. 그럴 기회가 전혀 없어 답답합니다.

최근 남편에게 이런 제 마음을 다 이야기했어요. 남편은 본인도 제게 대화 시도를 한다고 합니다. 오늘 뭐 먹었는지, 뭐 했는지 물으면 제가 항상 “그냥 있는 거 먹었어, 집에 있었어”라고 대답한다는데 할 말이 없었습니다. 문제라고 느끼고 있는 본질이 다른 것 같았어요. 언성을 높이며 울다가 요즘 저는 죽고 싶다는 말까지 해버렸어요. 여기 오기 전이 더 행복했다고까지 해버렸습니다. 남편이 “고쳐 볼게, 노력해볼게” 이야기해주길 바랐어요. 그런데 남편은 “그럼 가”라고 하더라고요. 말문이 막혔습니다. 방법을 모색해 볼 생각조차 없는 것 같았어요. “죽을 것 같다는데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냐”는 남편의 말에 그 짧은 상황에서도 우린 생각하는 게 정말 다르다고 느꼈어요.

막말로 그렇게 안 맞으면 헤어지면 그만이겠지만 저는 노력해보고 싶어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아는데 제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현재에 만족한다는 사람에게 제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걸까요?

송지윤(가명ㆍ32세ㆍ주부)

#A

남편은 감정이 단순한 사람

힘들어도 혼자 견디는 성향 강해

진지한 이야기 어려울 수 있어

가라고 한 것엔 행복 비는 마음도

쉬운 대화로 시작, 공감대 찾아야

지윤씨, 결혼하고 난 뒤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물론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온 남편도 피곤하겠지만, 지윤씨 말처럼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니까요. 아무리 힘들어도 결혼한 뒤에 하고 싶은 것만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지윤씨가 남편으로 인해 느끼는 속상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지윤씨는 깊은 바다 같은 사람이에요. 글만 읽어봐도 지윤씨가 얼마나 생각이 깊은 사람인지 알 수 있어요. 지윤씨는 내면의 깊은 곳까지 고민을 하고 거기에서 따라오는 감정도 다양하게 느낍니다. 동시에 굉장히 정돈 돼 있는 사람 같아요. 지윤씨는 자신의 앞가림을 잘하고 똑똑한 사람일 거예요. 진지한 고민도 많이 하지요. 지윤씨가 말한 대로 남편과는 이런 점이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누구 한 명이 좋고,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에요. 다만 남편은 지윤씨처럼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지니지 않은 거예요.

지윤씨는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지니고 있고 뭐든 잘 해내려고 해 왔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어요. 지윤씨는 부모님으로부터 의젓한 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읽었기 때문에 의젓하게 자랄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요. 지윤씨가 이야기했듯, 철이 안 들고 개구쟁이인 모습을 어렸을 때에도 가져보지 못한 거예요. 힘들다고 털어놓고 싶어도 징징댈 수도 없었을 거예요. “알아서 척척 잘하네” 라는 칭찬을 들으며 지윤씨는 그 모습으로 자신을 만들어 왔어요.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지윤씨가 굉장히 독립적인 사람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직 완전한 독립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예요. 어렸을 때 마음껏 의존하며 보냈어야 하는 시간에 지윤씨는 이미 홀로 서기를 시작해 버렸어요. 좋게 말하면 의젓하게 자란 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어릴 때 충족시켜야 할 부분이 결핍으로 남았어요. 그래서 지금 마음 깊은 곳에서는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은 욕구가 남아 있어요. 지윤씨, 말로 하지 않아도 누군가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위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요? 마음 편히 푹 안길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날 외롭게 하지 않고, 늘 내 옆에서 나를 보호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이러한 의존의 대상이 남편이 됐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지윤씨가 남편에게 느끼는 감정은 실제 남편이 섭섭하게 한 것과 어렸을 때부터 쌓인 결핍으로 인한 섭섭함이 더해져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 돼요. 지윤씨가 남편에게 요구하는 건 물론 부부라면 당연한 겁니다. 다만 남편은 유난히 이런 감정의 결핍을 충족해주기 어려워하는 사람이에요.

두 사람은 다르지만 비슷한 점을 지니고 있어요. 지윤씨의 남편도 독립적인 성향을 지닐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지요. 남편은 위로를 받아보고 위로를 건네는 경험이 부족할 수 있어요. 자신이 힘든 건 드러내지 않고 혼자 참고 견뎌낸 거예요. 지윤씨가 독립적이라는 칭찬을 받아 독립적인 사람으로 굳어져 버렸다면, 남편은 성장 환경 자체가 혼자서 클 수밖에 없었던 거죠. 어쩌면 한 번도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소중한 사람에게 내보인 경험이 없었을 수도 있어요.

두 사람은 상대방의 독립적인 면에서 매력을 느꼈을 것 같아요. 두 사람 모두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누군가가 자신에게 의존하는 경험이 부족해 독립인 것처럼 보이는 서로의 모습에서 편안함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결혼은 두 사람을 단순히 독립적인 두 성인이 아닌 애착을 주고 받는 관계로 바꾸었어요. 두 분에게는 이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물론 두 사람은 다른 부분이 있어요. 지윤씨는 마음이 힘들 때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남편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유형이에요. 이 절충점을 찾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미묘한 감정까지 느끼고 고민을 많이 하는 지윤씨가 힘들다는 마음을 “죽고 싶다”는 말로 표현했을 때, 남편은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이라고 느꼈을지도 몰라요. 남편이 가라고 표현한 건 “가버려!”라고 소리를 지른 게 아니라 “당신이 힘든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결혼 전이 더 행복하다면 당신이 좋은 쪽으로 해야지”라고 말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지윤씨는 “날 사랑해줘”라는 마음을 아이처럼 표현합니다. 남편은 “나도 힘들어. 나도 감정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며 역시나 아이 같은 답을 해요. 종류가 다를 뿐이지 비슷한 어려움을 갖고 자란 두 사람이 서로 약한 부분에서 이렇게 어긋나고 있는 거예요. 상대의 힘든 마음을 공감하고, 그 공감을 제대로 표현하는 건 이 부분을 이해해나가는 것부터 시작될 거예요.

저는 지윤씨가 다시 진심으로 웃을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그래서 조언을 드리고 싶지만, 지윤씨가 자신의 고통의 깊이에 비해 조언이 너무 단순하다고 여길까 봐 걱정이 돼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저 첫 단추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첫 발을 내디뎌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어요.

남편과의 대화를 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세요. 남편과 연애시절, 그와의 가벼운 대화가 즐거웠던 때를 떠올려 보세요. 지윤씨의 감정이 깊기 때문에 남편은 진지한 이야기를 어려워할 수 있어요. 절대 지윤씨가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두 사람의 문제를 풀어갈 때는 쉽게 풀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남편이 게임을 하고 있을 때 “30분만 TV 같이 보자” “아이스크림 하나 사와서 같이 먹자” 라고 시작해야 해요. 남편과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고, 진지한 사색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뭐 먹었어?” “뭐했어?” 물어보는 말이 의미 없게 들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 “그냥 있는 거”라고 답하기 보다 “그냥 있는 거 다 비벼 먹었는데 맛있더라. 다음에 같이 먹을까?”라고 대답해보세요. 남편과의 대화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될 거예요

부부는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는 유치한 모습도 보여줄 수 있는 사이에요. 유치한 애교도 부리고, 유치한 행동을 할 수도 있는 거예요. 물론 남편에게도 요구해야 하지만, 지윤씨부터 실천해볼 수 있어요. 가벼운 얘기와 농담으로 가까워진 뒤 인생을 소통할 수 있어요. 지윤씨의 노력만큼 남편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속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주 약간의 변화가 있더라도, 피식 하는 웃음이라도 알아 보면 좋겠어요. 결혼을 결심할 당시에는 남편을 사랑했었다는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윤씨의 말대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해 볼 만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지윤씨에게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외도의 문제를 떠나 아버지와 딸과의 관계로만 봤을 때 아버지는 항상 지윤씨를 사랑했어요.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도요. 그리고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건 암 세포예요. 아버지가 잘해줬던 걸 기억해봐도 좋고, 화나는 점을 모두 적어보는 것도 좋아요. 욕이 하고 싶다면 해도 좋아요.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지 않도록 충분히 모든 감정을 쏟아냈으면 좋겠어요.

정리=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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