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시청ㆍ낮잠ㆍ화투놀이 공간을
배움터ㆍ공연장ㆍ병원ㆍ도서관 등
다목적 기능공간으로 탈바꿈
“까막눈 100년보다 글을 배워 책을 읽을 수 있는 지금이 더 행복혀.”
13일 오후 충남 논산시 양촌면 모촌리 마을회관.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 10여명이 공책을 펴 놓고 한글을 한자 한자 써 내려갔다.
간이 책상을 앞에 앉아 허리도 아팠지만 힘든 기색 없이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간혹 어디서 “에구. 또 틀렸네”하며 한숨을 쉬자 한쪽에서 “그러니까 집에서도 공부를 해야지”라며 핀잔을 하자 웃음이 터졌다.
할머니들은 충남 논산시의 ‘동고동락’ 프로젝트의 하나인 ‘마을로 찾아가는 어르신 한글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동고동락은 논산시가 TV시청, 낮잠, 화투놀이 공간이던 경로당을 이웃끼리 따뜻한 정을 나누는 주민 공동생활공간으로 바꾸는 사업이다.
주요사업으로 ▦홀몸 어르신 공동생활제 ▦마을로 찾아가는 한글학교 ▦마을주민 건강관리 사업 ▦찾아가는 문화공연 마실콘서트ㆍ동고동락 행복콘서트를 추진하고 있다.
논산시는 2016년 12월 100세행복과를 신설, 기존 5개 과에 분산되어 있던 노인 관련 업무를 한 곳으로 모았다. 성인문해교육지원, 노인복지증지, 문화예술진흥, 평생학습조례 등 4개의 조례도 제정했다.
시행 3년 만에 본궤도 올라
“어르신 문해교육 열정 뜨거워”
한글대학은 2016년 22개 마을 노인 260명이 한글을 깨우친 이후 지난해 145개 마을 1,650명으로 확대했다. 올해는 303개 마을에서 3,050명이 한글을 배우고 있다. 비용은 선심성 복지사업의 비효율성을 바로잡아 절감한 3억2,800만원으로 충당했다.
간이 책상과 교재만 있으면 교육이 가능하고 적은 예산에 비해 성과가 높아 해마다 규모가 커졌다. 문해교육사 109명을 고용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져왔다.
70~80대 할머니들은 매주 2회 2시간의 수업에 참여해 읽기 쓰기 셈하기 등 기본교육과 지루함을 달래 주는 그리기와 만들기 등의 특화활동도 한다.
최고령 학생은 광석면 천동2리 한글대학에 다니는 102세 이태희 할머니로 지난해 입학해 한글을 깨우쳤다. 집보다 경로당 학교가 더 좋다며 며느리(67)와 함께 2년째 개근을 하고 있다.
가야곡면의 송병국(81) 할머니는 “10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그리운 남편에게 직접 손으로 편지를 쓰고 싶어 용기를 냈다”고 한글 공부를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 “뒤늦게 시작한 공부에 빠진 할머니들이 수업이 있는 날이면 농번기 밭일도 제쳐 놓고 마을회관으로 향할 정도로 열정이 뜨겁다”라고 밝혔다.
홍혜순(65) 강사는 “흰 것은 종이 검은 것은 글씨로 알고 살아온 노인들이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직접 공과금을 납부했다고 자랑할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의지를 높여 주기 위해 지난해 백일장을 열고 문집도 발간했다.
이와 함께 동고동락 사업의 하나인 ‘마을로 찾아가는 공동체 건강관리’ 사업은 의료진이 하루 2개 마을씩 515개 마을회관과 경로당을 직접 방문, 건강상담, 운동요법 등을 통한 건강서비스를 제공한다.
‘찾아가는 동고동락 행복콘서트’와 ‘마실콘서트’는 문화사각지대에 있는 소외된 주민에게 마을공연을 열어 문화 향유권 확대와 행복공감대를 만들고 있다.
시 인구의 23%를 차지하는 노인들의 고민을 잘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 주는 동년배 상담사도 운영해 노인 우울증과 자살 예방활동도 하고 있다.
시행 3년 만에 본궤도에 오른 동고동락 3개 사업은 경로당을 배움터, 공연장, 병원, 도서관 역할을 하는 다목적 기능 공간으로 변신시켰다.
황명선 논산시장은 “어르신들의 의지와 노력이 대단하다”며 “문해교육은 마음속에 간직한 한을 풀고 사회구성원으로 당당히 자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논산=이준호 기자 junh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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