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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시민단체의 역할과 한계

입력
2018.04.15 17:2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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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서나 감시자의 역할은 필요하다. 특히 위임받은 권력을 남용하려는 대리인의 유인이 구조적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에 대한 감시자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 헌법은 권력분립 원리의 선언을 통한 권력 간 상호 견제를 통해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화된 권력으로서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의 상호 견제만으로 상시적 권력 남용과 일탈을 막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건전한 시민단체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이다.

다수결 원리와 대의제 원리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소수의 집중된 이익이 과다대표되고, 분산된 다수의 이익은 과소대표되는 경향이 있다. 진입 장벽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직능단체의 이익으로서 지대(rent)는 체계적으로 과다보호되고, 현재세대와 미래세대의 환경적 이익 또는 소비자들의 이익은 체계적으로 과소보호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시민단체로서 환경단체 또는 소비자단체는 그와 같이 과소대표되고 있는 이익들이 정치 과정에서 정당하게 주장되고 구현되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시민단체 역할의 대표적인 순기능이다.

시민단체 역할의 결과가 늘 그런 순기능적 효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시민단체 활동이 계속되고 그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새로운 권력의 지위를 가지게 된다. 과소보호되고 있던 소수자나 약자의 이익을 보호하려던 시민단체 역할이 어느 순간부터는 시민단체 그 자체, 그리고 그 구성원의 이익과 영향력을 늘리기 위한 것과 구분이 모호해지게 된다.

시민단체 구성원들은 본인들의 우월한 도덕감정과 윤리의식을 자신들의 행동과 선택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삼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미 권력의 지위를 갖게 된 시민단체 그 자체의 활동에 대한 제대로 된 감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시민단체 구성원이 그 활동 경력과 네트워크를 자산으로 직접 정치에 뛰어들거나 행정부의 제도화된 권력자의 지위를 갖게 된 경우에 더 심각해진다.

특히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보다는 타인을 비난하고 감시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정치와 행정의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경우 보이는 경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정치 영역에서는 보다 자극적이고 인기영합적인 정치적 행태를 보이는 경향성이 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다양한 성향과 기질의 정치인들이 집합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정치의 과정이므로 그것 자체로 심각하게 볼 것은 아니다. 예외적으로 지나치게 규범적이기만 한 주장이 책임질 수 없는 방향으로 논의를 주도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주된 문제는 행정 영역에서 발생한다. 현대사회에서 행정은 어느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는 작용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선호를 가진 구성원들의 이익을 서로 조정하고 그 과정에서 실질적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를 계속 만들어가야 하는 작용이다. 많은 경우 그 분야의 전문적 경험과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타인을 비판하는데 많은 노력을 집중해왔던 사람들은 성공하기 쉽지 않은 역할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시민단체 활동 경력이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관료로서 출세하기 위한 스펙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발생한다. 우리 주변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 경우 순수하고 독립적인 감시자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시민단체의 영역에 추가적으로 유입되는 인적 자원의 구성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사회적 성공과 출세를 원하는 욕심 많은 사람들이 시민단체 영역에 모여들어서 규범과 도덕을 무기로 타인을 공격하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제도권의 권력자 지위를 추구하기 시작하는 순간 모든 것이 망가지게 된다. 시민단체 본연의 역할과 취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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