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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꺼풀 도려내는 심정으로 세월호 비극을 직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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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꺼풀 도려내는 심정으로 세월호 비극을 직시해야”

입력
2018.04.15 17:2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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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영화 ‘눈꺼풀’을 4년만에 개봉하는 오멸 감독. 그는 눈꺼풀을 도려내는 심정을 세월호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세월호 영화 ‘눈꺼풀’을 4년만에 개봉하는 오멸 감독. 그는 눈꺼풀을 도려내는 심정을 세월호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뭐든 해야 했다. 그러나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눈앞에 벌어진 비극을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밀려왔다. 세월호가 끝내 닿지 못한 섬 제주에서 오멸(47) 감독은 세월호 참사 사흘 뒤부터 시나리오에 매달렸다. 4개월 뒤인 8월 스태프 5명과 함께 거제도 인근 무인도에 들어가 영화를 찍었다.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집도 팔았다.

제주 4ㆍ3 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2013)로 이름 얻은 제주 토박이 오 감독은 그렇게 또 다른 4월의 비극을 껴안았다. 12일 개봉한 ‘눈꺼풀’ 얘기다. 달마가 면벽참선 중 졸음을 내쫓기 위해 눈꺼풀을 도려냈다는 데서 따왔다. 최근 서울 계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오 감독은 “달마와 같은 심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눈꺼풀’에서 학생들을 인도하는 선생님은 세상을 구한 미륵 같은 존재로 은유된다. 영화사 진진 제공
‘눈꺼풀’에서 학생들을 인도하는 선생님은 세상을 구한 미륵 같은 존재로 은유된다. 영화사 진진 제공

‘눈꺼풀’ 배경은 죽은 자들이 마지막으로 들른다는 섬 미륵도. 그곳을 찾은 영혼들과 그들을 위해 떡 짓는 노인의 이야기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세월호 희생자들이 온다. 갑자기 쥐가 들이닥쳐 섬은 폐허가 된다. 절구가 부서지고, 우물 물이 썩고, 노인과 세상을 연결해주던 라디오마저 고장난다. 노인은 떡을 만들지 못한다.

뱀, 지네, 풍뎅이, 흑염소, 절구 등에서 쥐까지. 영화는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이제야 말할 수 있게 됐네요(웃음). 그분 맞습니다. 배가 침몰할 때 가장 먼저 탈출하는 동물이 쥐라고 하더군요. 참사는 박근혜 정부 때지만 이전부터 이어진 우리 사회의 탐욕과 적폐를 짚어 보고 싶었습니다.”

절구가 부서지는 것은 시스템의 붕괴를 뜻한다. 노인은 절구를 던져버리고 그 행동이 미륵을 깨운다. 미륵은 물 속에서 세월호를 품는다. 오 감독의 목소리가 뜨거워졌다. “세상을 구한다는 미륵이 왜 그날엔 오지 않았는지 화가 났어요. 미륵을 깨우고 싶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사회를 바꾸지 못하면 눈꺼풀을 도려내는 고통은 계속될 겁니다. 만약 우리에게 미륵이 있었다면 그건 학생들을 구한 선생님일 거예요. 미륵불이 있던 자리에 선생님이 있는 장면은 그런 의미였어요.”

‘눈꺼풀’은 오래된 영화다.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과 CGV아트하우스상을 받았으나 이제야 세상에 나왔다. ‘지슬’ 때문에 오 감독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대가였다. 다른 일도 있었다. 제주 해녀 이야기를 그린 ‘인어전설’(2017)은 촬영 시작 직후에 “상영관 300개를 확보하라”는 부당한 요구와 함께 투자가 취소됐다. ‘지슬’로 화제가 됐지만, 그 뒤 삶은 더 고달팠다. 오 감독은 “9년이란 시간은 한 예술가에겐 젊음이 통째로 날아간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쉽게 회복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오 감독은 세월호에서 아직 내리지 않았다. 연말 촬영을 목표로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JTBC 예능프로그램 ‘전체관람가’에서 선보인 단편영화 ‘파미르’는 그 영화의 일부다. “시대를 이야기하는 건 예술가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영광이기도 하고요.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놓는 건 저의 숙제겠지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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