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주 컬럼바인 고등학교 3학년이던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는 총과 사제 폭탄을 짊어지고 학교로 향했다. 카페테리아에 미리 설치해둔 폭탄이 터지지 않자, 이들은 친구와 후배들이 밀집해 있는 카페테리아와 도서관을 휘젓고 다니며 900여 발의 총탄을 난사했다. 볼링이 취미이던 두 10대들은 총기의 폭력성 앞에 무감각해졌고, 그 극악무도함에 학생 12명, 교사 1명 등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에릭과 딜런은 경찰에 체포되기 직전 도서관에서 함께 자살했다.
세기말 미국 전역을 충격으로 몰고 간 교내 총기 참사인 컬럼바인 사건이다. 이후 미국에서 총기 규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물꼬를 텄지만, 전미총기협회(NRA)의 거센 로비에 부딪쳐 유야무야 됐다. 오히려 미국 사회는 범인들이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이나 락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며 범행 원인을 주변부로 돌리기에 바빴고, 총기 소지 문제는 비켜갔다.
이후 컬럼바인의 비극은 사라지기는커녕 동어반복 되고 있다. 32명이 희생된 2007년 버지니아 공대 교내 총격 사건의 범인 조승희가 컬럼바인 범인들을 ‘순교자’로 칭하며 모방범죄에 나선 게 단적인 예다. 지난 2월14일엔 플로리다 주 더글라스 고교 총기 사건으로 17명이 사망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컬럼바인 사건 이후 올해 4월까지 학교 총격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가 200여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3개 학교에서 18만7,000 명의 학생이 총격 사건을 경험했으며, 학교 총기 위협이 미국에서 일상적인 공포가 됐다는 얘기다. 뉴욕타임스는 컬럼바인 고교 참사 이후에 태어나서 거의 매년 학교 총기 참사를 목격하며 자란 현재의 10대를 통칭해 ‘총기 난사 세대(Mass Shooting Generation)’로 규정했다.
그런데 이들 ‘총기 난사 세대’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난달 24일 미국 전역에서 시위를 열었다. 이들의 외침은 살려달라는 ‘SOS’에 가까웠다. 집회 이름부터가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 이었고, 주된 구호는 “미 넥스트(다음 희생자는 내 차례?)”였다.
전에 없는 강력한 반발에 미국 정치권도 움찔했지만 결국 달라진 건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수정헌법 2조(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는 절대 폐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게다가 14일(현지시간)에는 보수 단체들이 소총과 권총을 들고 맞불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총기 소유주들의 자기 방어권을 지켜줘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19년이 흘렀지만, 컬럼비아의 비극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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