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보유’ 언급 없었던 중앙보고대회
예년과 달리 무력시위 동향도 안 보여
봄 예술축전 참가차 방북한 中대표단
김여정이 숙소 찾는 등 극진히 영접
남북ㆍ북미 연쇄 정상회담 앞두고
“도발보다 우군 부각 유리” 판단한 듯
최대 명절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을 맞는 북한의 분위기가 예년과 다르다. 미사일 발사나 신(新)무기 공개, 강경 발언 등으로 통상 부각해 온 ‘핵무력’ 대신 최근 정상회담 성사 뒤 회복세가 가파른 ‘북중 친선’을 과시하고 나섰다. 임박한 남북ㆍ북미 정상회담을 의식한 변화로 보인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TV는 김 주석의 106회 생일 전날인 14일 박광호 노동당 부위원장 사회로 열린 중앙보고대회 녹화 실황을 오후 6시 30분쯤부터 방영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보고에서 “우리 당의 자위적 군사노선을 일관하게 관철하여 나라의 방위력을 굳건히 굳건히 다지며 누구나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에서 혁명적으로 전투적으로 살며 일해 나가야 하겠다”고 역설했다. “최고 영도자 동지를 정치 사상적으로 목숨으로 옹호 보위하며 당의 사상과 영도를 일편단심 충직하게 받들어나가야 하겠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향한 충성도 독려했다.
다만 요즘 북한 지도부 공식 행사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핵 보유’ 관련 언급은 이날 보고에서도 없었다. 앞서 최룡해 당 부위원장도 11일 열린 김정은 위원장 당 제1비서 추대 6주년 중앙보고대회에서 김 위원장이 자위적 국방력 마련 등을 업적으로 쌓았다고 치켜세웠지만 핵은 거론하지 않았다. 지난해 105회 생일 중앙보고대회 때와 달리 올해 보고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하지도 않았다.
외무성 핵심 인사(한성렬 부상)가 “미국의 무모한 군사 작전에 선제 타격으로 대응하겠다”거나 “최고 지도부가 결심하는 때 핵실험을 하겠다” 같은 외신 인터뷰 형식의 고강도 육성 언사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던 지난해 같은 날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아직 군이나 정보 당국이 감지한 무력 시위 준비 동향도 없다. 2012년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은 태양절에 즈음해 무력 도발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다. 2016년 4월 15일, 23일 무수단 계열 중거리탄도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잇달아 시험 발사했고, 지난해에는 태양절 당일 대규모 열병식을 열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한 데 이어 이튿날과 4월 29일 미사일을 거푸 쏴 올렸다.
이런 ‘군사력 공백’은 외교력이 메우는 형국이다. 지난달 25~28일 김정은 위원장의 전격 방중 이후 빠른 속도로 밀착 중인 북중 간 사이를 북한이 표나게 드러내면서다. 14일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방북한 중국 예술단이 머물고 있는 평양 고려호텔을 방문, 단장인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환담하고 중앙발레단 단장과도 만났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이 “형제적 중국 인민의 예술 사절들이 평양 체류 기간 사소한 불편도 없도록 최대 성심을 다할 것”이라며 “중국 동지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예술단의 공연 활동이 성과적으로 진행되기를 축원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중앙통신에 따르면 이날 고려호텔에서는 북한 노동당 국제부 주최로 중국 예술단을 위한 환영 연회도 열렸다. 리수용 당 국제담당 부위원장은 환영 연설을 통해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동지의 첫 중국 방문으로 조중(북중) 친선관계가 새로운 높은 단계에 들어선 시기에 중국의 명성 높은 대규모 예술단이 조선을 방문한 것은 조중친선을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계승 발전시켜나가며 두 나라 문화교류의 초석을 더욱 굳게 다지는 데서 깊은 의의를 가진다”고 했다.
이에 쑹 부장도 답례 연설에서 “중국 예술단의 이번 방문이 두 당 최고 영도자 동지들께서 이룩하신 중요한 합의를 이행하고 중조 친선관계 발전을 추동하는 첫걸음”이라며 “이번 공연에서 반드시 훌륭한 성과를 거두어 중조 두 당, 두 나라의 친선적인 내왕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조선중앙TV가 이날 오후 중국 예술단의 평양공항 도착, 김여정 부부장의 예술단 숙소 방문, 당 국제부 주최 연회 등 3건의 개별 보도를 통해 중국 예술단 관련 영상을 7분가량 동안 방영하기도 했다. 영상을 보면 중국 예술단 일행이 평양공항에 도착하자 활주로에 모여 있던 북측 환영 인파가 양국 깃발과 꽃을 흔들고 “조중친선”을 외치며 중국 예술단 일행을 환영하고 있다. 중국 예술단은 ‘제31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참가차 13일 평양을 찾았다.
올해가 북한이 중시하는 정주년(5ㆍ10년 단위로 꺾이는 해)이 아닌 데다 ‘올림픽 휴전’으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 기간과 규모가 자연스럽게 축소되는 바람에 북한 무력 반발의 빌미가 마땅찮게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달 27일과 5월 말이나 6월 초쯤 연이어 열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북한의 방향 선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비핵화 협상을 앞둔 상황에서 무력 과시나 핵 위협으로 불필요하게 상대방을 자극하기보다 우군(友軍)과의 돈독한 관계를 강조하는 편이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는 데 더 낫다고 북한이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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