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의 ‘평양 오르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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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의 ‘평양 오르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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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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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정인이 지난 1일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우리 예술단 공연 '봄이 온다'에서 '오르막길'을 부르고 있다. MBC 방송 캡처

이달 문화계에서 가장 화제였던 공연을 꼽자면 단연 우리 예술단의 방북 무대였던 ‘봄이 온다’ 였을 겁니다. 13년 만에 이뤄진 남북 문화 교류였으니 말입니다. 우리 쪽에서 꾸려진 예술단의 면면은 화려했습니다. 조용필을 중심으로 최진희, 이선희, 강산에, 윤도현이 속한 록밴드 YB, 백지영부터 레드벨벳까지. 우리 무대에선 한 무대에서 보기 어려운 장르별 유명 가수들이 모여 지난 1일과 3일 북한에서 노래하며 화합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무대는 정인의 ‘오르막길’이었습니다. 곡의 노랫말이 현 남ㆍ북 상황에 잠언처럼 울림을 줘서였습니다.

‘오르막길’은 새로운 출발을 앞둔 연인들의 노래입니다. 흔해빠진 사랑가와는 결이 다릅니다. 곡은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라고 시작합니다. ‘가파른 이 길을 좀 봐’라면서죠.

사랑으로 결혼이란 결실을 봤지만, 삶의 동반자로서의 여정은 분명 가시밭길일 겁니다. 서로 지쳐 손을 놓을 수도 있습니다. 노랫말처럼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가 될지도 모릅니다. 단단히 옷깃을 저며야겠지요.

고난의 연속에서 필요한 건 ‘동지애’ 일겁니다. 서로 한 발짝씩 오르막길을 올라가며 함께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죠. 남ㆍ북도 연인은 아니지만, 인연 인건 분명합니다. 인연은 긴 겨울을 지나 ‘봄이 온다’로 다시 봄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한 관객들이 가득 찬 공연장에서 ‘오르막길’이 흘렀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첫 자리에서 울려 퍼진 ‘오르막길’이 ‘자 이제 서로 눈을 맞추며 다시 시작해보자’란 속삭임 같았다랄까요.

‘오르막길’은 정인의 솔로 앨범에 실린 곡이 아닙니다. 가수 겸 프로듀서인 윤종신이 작사해 정인에 노래를 부탁, 2012년 ‘월간 윤종신 6월호’로 발표했습니다. 정인은 이 곡을 왜 ‘봄이 온다’ 가창 곡으로 택했을까요.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정인은 “(우리 정부에서) 이 곡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라고 했습니다. ‘오르막길’은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 새해 기자회견 시작 전 회견장에서 흘러나와 새삼 화제가 됐습니다. 당시 이 곡을 택한 건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으로 알려졌습니다. 탁 행정관은 우리 예술단의 ‘봄이 온다’ 기획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봄이 온다’는 정인의 첫 방북 무대였습니다. 관객 반응은 어땠을까요. 정인은 “솔직히 큰 기대 안 했다”면서도 “호의적인 표정으로 경청해주는 분위기”였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무대에 서면 환호가 터지는 가수가 아니라 북한에서도 별 기대는 없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아 움츠러들진 않았다는 얘기였습니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북한 가수들과 달리 정인은 허스키한 음색이 독특한 가수입니다. 북한 음악인들도 정인의 개성 있는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보였습니다. 정인은 “북한 가수 송영이 ‘들으면 들을수록 (목소리가) 매력 있다더라”고 했습니다. 송영은 정인과 3일 공연에서 우리 노래 ‘얼굴’을 합창한 가수입니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도 우리 예술단 만찬에서 정인에게 ‘노래 잘한다’ ‘노래 좋다’란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정인은 1일 공연에서 두 곡을 불렀습니다. ‘오르막길’에 앞서 피아니스트 김광민의 연주에 맞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를 허밍으로 불러 공연의 문을 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김광민의 2집 ‘섀도 오브 더 문’(1994)에 실린 곡입니다. 원곡엔 피아노 연주에 맞춰 성악가의 허밍이 들어가 있습니다. 자신이 부른 노래도 아닌, 성악 발성의 원곡을 그것도 북한에서 선보이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요. 정인이 기다렸다는 듯 긴 얘기를 꺼냈습니다.

“처음에 불러달라는 요청받았을 때 ‘성악 발성이 내 목소리에 잘 묻을까’란 걱정을 했어요. 처음 요청 받았을 땐 이 곡의 공연 순서를 몰랐고 나중에 본 진행표에 첫 곡으로 올려져 있어 떨렸죠. 조용필 선배님의 연습실(YPC프로덕션)에서 김광민 선배님 연주에 맞춰 처음 연습했는데, 윤상(방북예술단 음악 감독)오빠가 그러더라고요. ‘진짜 안 어울릴까 봐 걱정했는데 잘 묻어 다행’이라고요. 그때 ‘그럼 왜 나 시킨 거예요?’라고 장난 쳤던 기억이 나네요, 하하하.”

처음 가 본 북한의 풍경은 어땠을까요. 정인은 “평양은 신시가지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다 본 붉은 글씨로 새겨진 건물 간판을 보면서 ‘아, 북한이구나’를 실감했다고 합니다. 3박 4일 동안 우리 예술단은 공연장과 숙소인 고려호텔 외 개인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일정은 없었다고 합니다. 옥류관에서 맛본 평양냉면은 어땠을까요. 정인은 “대중적인 맛”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린 평양냉면을 맑은 육수에 다른 것 섞어 먹지 않잖아요. 그런데 북한은 다르더라고요. 다진 양념을 비빔냉면처럼 넣어 먹었어요. 면에 직접 식초를 뿌려 먹으라 권하기도 하고요.”

외국인 관광객을 맞는 호텔인 만큼 숙소엔 투숙객을 위한 상점도 있었다고 합니다. 정인은 이곳에서 고추조림, 햄 등을 사 맛봤다고 합니다. 남편인 조정치를 위해 ‘송악 소주’ 한 병도 챙겼습니다. ‘봄이 온다’로 서울을 떠나 있는 동안 조정치가 아직 돌이 덜 지난 아이를 집에서 보고 있어 육아 선물로 준비한 겁니다.

“30도가 넘는 술인데, 맛있더라고요. 서울에선 정신없어 오빠(조정치)완 아직 먹진 못했어요. 오빠가 뜻 깊은 공연이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줬는데 곧 한잔해야죠, 하하하.”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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