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러시아와 사전 조율 없이 시리아를 공습하자 러시아 정부와 의회 등은 강력한 반발을 표명하고 있다. 다만 미국의 공세가 일단락되고 화학무기 억제라는 명분에 맞춰 공습의 범위를 제한한 만큼, 향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의 강경 태세에 내놓는 대응이 시리아를 둘러싼 대결구도의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미국주재 러시아대사는 14일(현지시간) 미국ㆍ영국ㆍ프랑스의 시리아 공습이 있은 후 성명을 통해 “미국의 공격에 상응하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사전에 치밀하게 짜 맞춘 전쟁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러시아)는 위협받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공격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모욕한 것이며, 수용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화학무기를 보유한 미국이 다른 나라를 도덕적으로 비판할 권리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 국가 두마(의회) 국방위원회의 알렉산데르 셰린 부위원장은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세계의 범죄자다. 하지만 그걸론 충분치 않다. 그는 제2의 아돌프 히틀러다”라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공격 시점을 직접 고른 것이 마치 히틀러가 소비에트 연방을 침공한 것과 같다는 논리다. 셰린 부위원장은 “러시아는 이를 공격 행위로 받아들일 것이다. 모든 국제 규범과 국제법상의 권리가 침해 당했다”라면서 “핵보유 국가로서 안보와 조력의 의무를 지닌 주권 국가에 대한 사실상 전쟁 선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러시아 관계자들이 거칠게 반응하고는 있지만 정부 공식 창구의 반응은 한층 절제돼 있다. 우선 러시아 측은 시리아 공습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14일 “미국 등의 시리아 공습이 러시아 대공방어망이 설치된 타르투스ㆍ흐메이밈 기지에 미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마리아 자카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수년간 테러리스트의 위협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국가에 공습이 가해졌다”라며 “마침내 평화로운 미래의 기회를 찾은 순간 시리아의 수도를 포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마스쿠스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이날 공습으로 러시아인이 피해를 보았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고 리아노보스티통신에 전했다. 타스통신은 13일 시리아를 방문한 러시아 의회 대표단이 묵고 있던 다마스쿠스 시내 호텔도 공습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서구 언론들은 미국의 공습이 러시아의 군사적 반격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미국이 러시아와 정면 충돌을 원하기보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외교 난맥을 타개하는 성격으로 공습을 결행했다고 봤다. 영국과 프랑스를 끌어들여 대(對)러시아 공동전선을 과시하는 한편 러시아나 이란과 연결된 표적은 공격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점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러시아의 현재 전력으로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극적인 반격에 나서기에 위험부담이 지나치게 크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미국평화연구소의 모나 야쿠비언 중동 전문분석관은 미국외교협회(CFR)에 “러시아가 강경한 신호를 보내고는 있지만 뒤로는 충돌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라며 “미국의 미사일 공격이 시리아 전쟁을 둘러싼 러시아나 이란의 손익계산을 바꾸게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러시아가 시리아 동부 데이르에조르 일대 전선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는 반군 시리아민주군(SDF) 등을 압박하기 위해 시리아 정부군에 더 많은 지원을 보내거나, 사이버공격 등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반격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러시아와 함께 친 시리아 국가로 지목된 이란 역시 미국 등의 공습을 규탄했다. 이란과 연결된 레바논 무장집단 헤즈볼라의 알마나르TV에 따르면 이란 외교부는 시리아에 대한 3개국의 공격을 규탄하며 지역에 부정적이 결과를 불러올 것으로 우려한다고 밝혔다. 또 미국의 시리아 공격이 노골적인 국제법 위반이자 시리아 주권에 대한 침해라고 덧붙였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