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 두려워” 호소 배경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생기지만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거취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개혁적 성향을 가진 인사일수록 도덕성에 대한 국민 눈높이나 야권의 반발이 거세다는 점을 토로한 것이다. 실제 지난 1년 동안 낙마한 고위공직자 후보자 중에는 문 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지명한 진보ㆍ개혁 성향 인사가 적지 않다.
지난해 6월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사퇴가 개혁인사의 첫 낙마 사례로 꼽힌다. 안 후보자는 진보 성향이 뚜렷한 법학자인 데다가 비검찰 출신으로 법무부의 문민화ㆍ탈검찰화를 노린 인사였다. 하지만 ‘몰래 혼인신고’ 사실이 알려져 지명 5일 만에 자진 사퇴 했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도 음주운전 허위 해명, 사외이사 업체의 임금 체불 의혹 끝에 지난해 7월 자진 사퇴했다. 조 후보자는 노동문제를 오래 연구해 문재인 정부와 노동계의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던 인사였다.
문 대통령은 또 인권변호사 출신의 이유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신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했지만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투자 의혹으로 지난해 9월 자진 사퇴했다. 진보 성향의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도 야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종교나 가치관이 문제가 된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나 ‘황우석 논문 조작 사태’에 연루된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됐던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보좌관 후보자 사퇴 사례도 있지만, 주요 낙마자는 진보ㆍ개혁 성향 때문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는 지난해 11월 거듭된 인사 논란을 돌파하기 위해 고위공직 원천 배제 기준을 만들고 세부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검증을 강화하되, 일단 객관적 검증을 통과하면 야권의 정치 공세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의도다. 문 대통령은 김기식 원장에 대해서도 “문제되는 행위 중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위법이 아닐 경우 그대로 안고 가겠다는 의미도 된다.
주목되는 부분은 문 대통령이 “당시 국회의원들의 관행에 비추어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위법이 아니더라도 사임토록 할 것”이라고 말한 대목이다. 도덕성을 평가하기 위해 일종의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개혁 성향 인사에 대해서도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또 일각에선 국회와 정치권의 관행에 대한 비판이라는 시각도 있다.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 지원으로 해외출장을 가거나, 정치후원금을 임기 말 국고에 반환하지 않는 관례가 다수 있었는데 김 원장에게만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민다는 지적인 것이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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