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式 개방모델 꿈꾸는 김정은
북한 특수성ㆍ대화 상대 인정해야
남북 정상회담 정례화로 신뢰 구축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은둔의 지도자였다. 부인을 공식석상에 대동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대중 접촉을 꺼렸고 공개연설도 거의 하지 않았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전까지 그의 말투나 스타일 등이 베일에 가려 있었던 이유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다르다. 청소년기 5년을 스위스에서 지냈다. 인도의 실리콘밸리를 방문했고 베이징 중국과학원도 둘러봤다. 대외정책에서도 개방성 투명성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진다. 대중 접촉이 잦고 대중연설에도 적극적이다. 부인 리설주가 공개석상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국제관례를 따르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 준다. 시장경제에 관심이 많은 실용주의자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김정은이 꿈꾸는 미래는 뭘까.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그의 말이 진심이라면, 아마도 중국이나 베트남식 개방 모델일 게다. 시장경제와 외자 유치를 통해 인민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세습 공산국가 말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비핵화의 관건은 핵이 없어도 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최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북의 안보 우려 해소가 비핵화의 본질”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호전적이고 거짓말을 일삼아 온 북한을 믿기 어렵다고? 김정은 입장에서 보면, 한국과 미국은 전쟁을 치른 당사국이다. 전쟁을 잠시 멈춘 정전 상태가 65년간 지속 중이고, 세계 최강의 군대가 휴전선 남쪽에 주둔하고 있다. 북한 경제력(GDP 기준)은 남한의 40분의 1 수준. 체제 안전에 대한 국제적 보장 없이는 생존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니 허약한 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핵실험과 군사도발 등 자해적 공갈에 매달려 온 것이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격이다.
문제는 그간 쌓인 불신의 벽이 높다는 점이다. 남북, 북미 간 상호불신이 평화체제 정착을 방해했던 역사적 경험을 무시하기 어렵다. 독일은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일관된 통일정책을 폈다. 보수정당인 기민당의 헬무트 콜 수상은 사민당 빌리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을 계승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뀌면 대북정책도 오락가락했다. 진보정권 10년간 이어져 온 대북 포용정책은 MB정권 들어 적대적 압박정책으로 돌변했다. 북한의 핵 포기 대가로 체제 보장과 경제적 보상을 해 준다는 합의는 무시되고, 핵을 먼저 포기해야 지원해 준다는 정책이 전면에 등장했다.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게 된 시발점이다.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큰 틀에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방법론에 합의한 뒤 사찰-폐기-검증이 철저히 이행되도록 계획을 잘 짜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 회복이다. 기업으로 치면 김정은은 오너, 문재인 대통령은 월급쟁이 사장이다. 4년 뒤 사장이 바뀌어도 정상회담에서 이룬 합의가 지켜질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줘야 한다. 70년 넘게 이어져 온 긴장 상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북한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체제 안전이 전제돼야 공존공영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번의 만남으로 70여년 쌓인 불신의 벽을 허물 수는 없다. 남북 정상이 자주 만나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2월 취임식에서 이렇게 제안했다. “김일성 주석이 남북한 동포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원한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봄날 한라산 기슭에서도 좋고, 여름날 백두산 천지 못가에서도 좋습니다. 거기서 가슴을 터놓고 민족의 장래를 의논해 봅시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유도하려면 김정은과의 접촉 공간을 늘려야 한다. 자주 만나 가슴을 터놓고 얘기해야 한다. 그래야 생각이 바뀌고 관계가 달라진다. 남북 정상회담을 정례화하자. 백두산 천지도 좋고, 한라산 기슭도 좋다. 두 정상 간 신뢰가 쌓이면 후속 조치가 굳건히 이행되고 미국 중국과의 공조도 원활해질 것이다. 판문점 정상회담이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의 외딴섬 한반도에 평화의 봄을 가져오길 간절히 기원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