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소신 보이던 수능 절대평가
돌연 “정부 기본입장 아니다”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 방침은
여론 질타 쏟아지자 1년 유예
교육부 핵심업무 대입제도마저
국가교육회의에 결정 떠넘겨
여론ㆍ청와대 눈치에 갈팡질팡
“교육부 차라리 없애자” 뭇매
지난해 7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키를 잡은 이후 9개월 동안 보여준 교육정책이 처참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진보교육감 출신인 김 부총리의 소신으로 받아들여졌던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180도 바뀌고, 여론 뭇매가 두려우면 당장 해결해야 할 것도 일단 미뤘다. 심지어 주무부처이면서도 쏙 빠진 채 민간인이나 국민들에게 결정을 떠넘기며 책임을 피하기까지 한다. 교육당국의 이런 오락가락 행보에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커지면서 ‘백년대계’ 교육을 향한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180도 뒤집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절대평가가 정부의 기본입장이라는 것은 오해입니다. 장관이 된 뒤에는 절대평가를 얘기한 적도 없습니다.” 김 부총리는 지난 11일 현 중3 학생들이 치를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시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수능 평가 방법에 대해 ▦전과목 절대평가 전환(1안) ▦상대평가 유지 원칙(2안) ▦수능 원점수제(3안) 등 3가지 안을 만들어 국가교육회의에 제시하면서 1~3안 중 어느 쪽에도 치우친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었다.
지금까지 현 정부 교육당국이 ‘절대평가 확대’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믿어왔던 학생과 학부모들은 뒤통수를 맞은 분위기다. 실제 김 부총리는 불과 두 달 전인 2월 초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도 올해 정시모집에서 영어 4등급을 받고 서울대에 합격한 수험생의 예를 들어 수능 변별력 약화를 지적하자 “부작용이 아닌 효과”라며 절대평가에 강한 믿음을 보였다. 지난해 8월 내놓았던 수능 개편안 시안에서도 “4과목 절대평가, 전과목 절대평가 외에 3안은 없다”고 못박았고, 교사 간담회에선 “교육 내실화를 위해 절대평가 전환은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주요 대학들에 전화를 걸어 2020학년도 정시모집 확대를 요청한 박춘란 차관의 행태 역시 10년 넘게 이어진 ‘수시 확대ㆍ정시 축소’ 기조를 뒤집은 것이다. 그 이전까지 교육부가 ‘정시 확대’를 언급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논란 되면 미루고
면밀한 검토 없이 덜컥 정책을 발표했다가 여론이 불리해지면 발을 빼는 모습도 여러 차례 보였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유치원ㆍ어린이집에서 방과후 영어수업을 올해 3월부터 금지한다는 방침을 내놨다가 3주 만에 시행 여부 자체를 1년 유예했다. 영어 사교육 풍선효과를 우려하는 질타가 쏟아지자 사실상 여론에 백기투항한 것이다. 이 때문에 초등 1ㆍ2학년만 영어 공교육 대상에서 빠지는 기형적 구조를 낳았고 “백년대계는커녕 1년 앞 정책이나 제대로 짜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해 8월 수능 개편안을 1년 미룬 건 더 무책임했다. 현 고1 학생들은 교육과정(2015 개정 교육과정)과 수능 시험이 별개인 상태로 수업을 들어야 하는 처지이고, 새로운 대입을 치러야 하는 현 중3은 최대 희생양이 됐다.
뒤로 숨어 피하고
심지어 교육부는 핵심 관할 업무를 제쳐 놓고 뒷짐을 지고 있다. 대입제도는 1945년 해방과 함께 대학별 고사를 시작으로 수많은 개편을 겪은 교육부 중ㆍ장기 정책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수능만 해도 탐구영역 선택과목과 표준점수 체제를 도입한 1999년도 이후 다섯 차례나 큰 변화를 줬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수시ㆍ정시모집 통합, 수능ㆍ학생부종합전형(학종) 균형, 수능 절대평가 전환 등 쟁점을 총망라한 메뉴만 공개하고 공을 국가교육회의로 넘겼다. 학종-수능 전형간 황금비율을 비롯해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면 수십~수백가지의 시나리오가 나오는데도 개편안의 원칙이나 우선순위 의견은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김 부총리는 “특정안에 비중을 두지 않고 국가교육회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말만 되뇌었다. 여기에 당연직인 부처 장관 9명을 제외한 국가교육회의 민간위원 12명 중 현직교사는 물론, 입시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과연 4개월 안에 제대로 된 대입 셈법을 내놓을지 의구심은 한층 커진다.
수능과 더불어 입시의 양대 기반인 학생부 신뢰를 높이는 방안도 ‘정책숙려제’에 맡겨졌다. 무작위로 뽑은 국민 100명에게 의견을 물어 결론을 내겠다는 건데, 결과적으로 8월 나올 대입 개편안에서 교육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상황이 됐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잡아 줄 내부 조율 시스템 부재는 교육부 무용론을 부추기는 또 다른 원인이다. 이낙연 총리는 1월 방과후 영어교육 금지 논란 당시 “교육부로부터 사전에 얘기를 들었으면 한다”며 불협화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한 교육부 파견 공무원은 12일 “첨예한 대립이 예상되거나 민감한 정책의 경우 교육부가 단독으로 입안하지 말고 청와대 및 여권 수뇌부의 일정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묵계가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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