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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스마트폰만 보는 아빠… 콩이의 주말은 어떻게 흘러갈까

입력
2018.04.13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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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시절이 짧다. 괜한 조바심과 억울한 마음을 누르면서 스마트폰을 쳐다본다. 꽃 구경 다니는 지복의 임자들이 틀림없이 근사한 절경을 찍어 보내줄 것이다. 얼마 전 이탈리아의 젊은 부부가 절경으로 이름난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셀프 카메라 찍기에 정신이 팔려 마침 불어댄 세찬 강풍에 아기를 유모차째 날려 보낼 뻔했다는 뉴스를 접한 것도 스마트폰에서다. 뉴스를 읽는 순간, 유모차에 갓난쟁이 싣고 다니는 조카들이 수두룩한 터라 바로 그 스마트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그렇게 저렇게 우리의 일상사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꽃샘바람 속에 출간된 그림책 ‘아빠와 토요일’은 훈훈하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이 주도하는 동시대 우리 삶을 뛰어난 솜씨로 포착했다는 점, 실제 상황을 묘사한 그림과 그 상황을 암시하고 표현하는 스마트폰 상 이미지 또는 텍스트가 나란히 펼쳐지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오늘은 토요일이에요./유치원 안 가는 날./오늘은 엄마가 집에 없어요.”라고 콩이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첫 장면을 열지만, 이후의 모든 장면은 콩이와 아빠의 대화 및 스마트폰에 뜨는 다양한 텍스트가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시적인 글과 예술적인 그림이 조합된 장면들을 기대하는 그림책 마니아에게는 낯설고 불편한 실험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작가가 발명한 새로운 망원경으로 스마트폰 부족의 일상을 들여다보기란 근사한 경험이다.

아빠와 토요일

최혜진 글∙그림

한림출판사 발행∙36쪽∙1만2,000원

어느 토요일, 콩이의 하루는 육아 전담 엄마 품을 떠나 일일 육아 당번 아빠에게 위탁된다. 아빠는 평소의 습관대로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육아의 모든 순간을 이어간다. 놀이터 나갈 준비를 마친 콩이, ‘오늘 미세먼지’ ‘6살이 좋아하는 체험’ ‘날씨’ ‘주식’ ‘아이와 함께 크는 아빠 육아’ 등의 검색어가 떠있는 스마트폰 화면, 빨리 가자며 아빠 손을 당기는 콩이에게 조심하라면서도 정작 자신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앞을 보지 않는 아빠, 스마트폰 프레임 속에서 그네 타는 콩이를 찍는 아빠, 그네를 타며 구름까지 갈 듯한 기분을 즐기는 콩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창에 올린 그네 타는 콩이 사진과 콩이의 성장을 감탄하는 아빠의 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위트와 냉소와 불안이 누적되고 중첩되면서 자신의 나날을 돌이키는 쪽이 어른 독자라면, 즐거움과 행복감을 당차게 요청하며 좌절과 성공을 겪는 콩이를 따라 웃고 우는 쪽은 어린이 독자일 것이다.

스마트폰은 육아 경험의 결핍과 육아 방법의 혼돈을 해결한다. ‘도시 아파트 거주 일가족의 토요일’에, ‘여행 떠난 엄마를 대신해 아이를 도맡은 아빠’의 의지처로서, ‘육아의 지침과 조언 얻기’에, ‘멀리서 사랑을 주고받기’에, 더없이 중요하고 따스한 존재로 등장하고 기능한다. 딱딱하고 차가운 물성의 한낱 기계가 그처럼 우리 삶의 중앙을 차지한 채 일상을 기획하고 심지어 따스한 연대를 구현해 내어도 좋을까. 다행히 ‘아빠와 토요일’의 결말은 진실하고도 꾸밈 없는 긍정으로 빛난다.

디자이너 출신 작가가 특히 공들인 것은 각 장면을 풍성한 느낌으로 살려내기. 수채물감 연필 색연필 오일파스텔 흑연 등 다양한 질감과 색감의 채색과 함께 거품 찍기를 비롯한 스탬핑과 콜라주 기법으로 세련되고도 포근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작업 내내 어린 딸이 곁에서 놀며 참견하고 끼어들었다니, 그 또한 느긋하고 풍성한 분위기에 한몫 한 듯하다. 생애 첫 그림책을 펴낸 최혜진 작가가 자신을 비롯한 세상 모든 부모들에게 바친 헌사도 놓치지 말자. “아이와 함께하는 토요일/두 눈에 담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이상희 시인∙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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